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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필경사

by 鄭山 2010. 6. 15.

 

 

 

'필경사(筆耕舍)'입니다.

충청남도 당진군 부곡리 입니다.

 

일제치하의 저항시인이자 농촌계몽문학의 선구자인 소설가 심훈(沈勳, 본명 대섭大燮, 1901-1936)이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가 살고있던 이곳에 내려와서 스스로 설계해서 지었다는 아담한 한옥이랍니다.

조선중앙일보에 연재소설 '직녀성'을 연재하고 그 원고료로 이 '필경사'를 지었다구요.

단순한 한옥이 아니라 초가지붕을 얹은 양옥집입니다.

현관에 들어서면 왼쪽에 거실이 있고 안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방에는 다락이 있습니다.

현관 오른쪽이 서재(집필실)입니다.

서재에는 양식 책상과 좌식 책상이 모두 놓여 있군요.

 

심훈은 이 집을 '필경사(筆耕舍)'라고 이름 짓고

이 집에서 우리나라 농촌계몽소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그 유명한 '상록수를 집필 했답니다.

그리고 다음해(1936년),

'상록수' 간행을 위해 상경, 원고를 교열하다 장티프스에 감염되어 36살의 젊은 나이에 병사를 하셨다지요.

 

아래 '파이'는 상록수 문화관에 걸린 심훈 선생의 사진과 '필경사'의 이모저모 입니다.

아래 '스라이드'를 크릭하시면 개별사진들을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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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앞에 건축되어 있는 '상록수 문화관'입니다.

심훈선생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고 선생을 소개하는 짧은 영화(10분품)도 한편 보실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관 앞에 세워진 '필경사'내력 소개 안내탑 입니다.

음각된 설명문구들에 입혀저 있던 검은색 페인트들이 퇴색되고 없어서 읽기가 아주 불편합니다.

 

 

심훈선생의 묘소입니다.

2007년에 이 곳 '필경사'로 묘소를 이전해 왔다는 군요.

세상을 뜨신 날자는 일제치하 1936년 9월10일이었습니다.

선생의 시(詩), '그날이 오면'을 통해 그렇게나 절절하게 기다리던 해방도 못보신채 세상을 뜨셨습니다.

 

 

문화관 옆에 세워진 선생의 초상입니다.

뒷면에 새겨진 '건립취지문'을 읽습니다.

"위의 얼굴은 심훈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당진군의 도움을 받아 상록문화제 실행위원회가 세우다.

2001. 10. 11. 상록문화제집행위원회"

그리고 조각가 한선현님의 작품이라고 음각되어 있네요.

 

 

 

 

그리고 마당 한켠에 또하나의 조형물이 세워저 있습니다.

작품명:'그날, 쇠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라'

작가명: 이종섭

제작년도: 2001년

이 조각작품 역시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년도에 세워진 모양이로군요.

 

 

상록수문화관에서 틀어준 선생의 일대기 영화를 보면서 선생의 절절한 독립의지에 큰 감명을 받습니다.

1930년에 쓰셨다는 시(詩), '그날이 오면'의 영화속 나레이터의 낭송은

선생의 독립을 향한 강렬한 소망에 몸을  떨게 했고

해방을 맞지 못하고 돌아가신 애통함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했습니다.

 

그날이 오면/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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