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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시사단(試士壇)

by 鄭山 2016. 12. 12.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의 학업과 유업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진 곳이 '도산서원(陶山書院)'이지요.

그 '도산서원(陶山書院) '정문을 들어서지 말고 뒤쪽으로 낙동강 줄기 건너에 원형언덕으로 예쁘게 정돈된 비각(碑閣)'이 보입니다.

'시사단(試士壇)'입니다.

한양을 벗어나 치뤄진 과거시험을 기리고자 세워진 '비각'이랍니다.

1796년(정조20년)때의 일입니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념하기위해 이조판서 이만수에게 도산별과를 만들어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라 이릅니다.

도산서원이 협소해서 강거너 모래밭에서 과거시험이 치뤄젔고 당시 7천여명의 인재들이 이곳에 모였답니다.

한양을 벗어난 장소에서 처음 치뤄진 이날의 과거시험을 기리고자

1796년(정조20년) 영의정 채제공(蔡濟公)의 글로 비문을 새기고

'시사단(試士壇)'을 세웠다고 합니다.



원래는 강가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안전을 장담치 못하게 되자  

1976년, 지상10m,반경10m의 동그란 언덕을 쌓고 그 위로 비각과 비를 옮겼답니다. 

그 이후 '시사단'은 '도산서원'과 떨어저 강으로 막히게 되었고 두곳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은 나룻배가 다녔답니다.

지금은 잠수교가 놓아지고 돌아서 접근이 가능하답니다.



퇴계선생은 "평생을 낮춤과 배려로 일관"하셨다구요. (韓昌林교장)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겐 후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삶을 몸소 실천한 분이다.

정조는 퇴계선생이 남긴 학덕에서 바로 이 부분, 즉 낮춤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배려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치유의 코드를 읽어내고 마음으로 심복한 것이 아닐까?

정조가 도산서원에서 과거를 보게한 까닭인듯 싶다." (김병준-한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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