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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삼성 교통박물관

by 鄭山 2010. 4. 26.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유운리 292번지에 소재한 '삼성화재 교통박물관' 입니다.

흔히들 '삼성교통박물관' 또는 '교통박물관'이라고 부릅니다.

네비게이션에 입력할때도 그렇게 호출합니다.

그러니까 '에버랜드', '호암미술관', '교통박물관'등등 삼성의  문화,여가시설 들이 모두 이곳에 밀집해 있는 곳이지요.

 

삼성그룹은 유난히도 자동차에 강한 애착을 가졌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르노삼성자동차'로 넘어가고만 '삼성자동차' 공장을 세웠고

그 부산물로서 이 '교통박물관'이 남게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시장은 수많은 자동차들이 전시되어있는 1층 전시장과 자동차 경주의 세계를 설명해주는 2층 전시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1층 전시장으로 들어섭니다.

'로비전시장'입니다.

자동차의 아름다움(Beauty)'을 주제로 기회해 놓았다는 전시장입니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당시의 '문화현상을 반영한 예술품으로 해석한 전시'라는 설명입니다.

아름다운 곡선과 현란한 원색의 옛날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정말 '자동차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케 해줍니다.

 

 

'주전시장'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자동차들을 수집해다 놓았을까 싶습니다.

세계각국의 옛날차들이 많이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역사의 모든 차량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당시 내노라했던 자동차들은 모두 모여있는듯 싶습니다.

자동차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께는 아마도 황홀한 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레스티지, 퍼블릭, 스포츠, 코리언, 모터사이클의 다섯가지 주제별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코리언'이라는 주제의 전시코너는 한국자동차 초창기 모델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자동차 체험나라'라는 별도로 마련된 공간입니다.

어린이들이 직접 조작해 볼수있도록 작동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동차의 작동원리와 부품의 발달과정을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노력들을 해 놓았군요.

 

 

'2번가 이야기'라는 전시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동차의 르네상스에 비견된다는 1920-30년대 서양의 어느 거리를 배경으로 사람과 자동차가 만드든 풍광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가볍게 지나가며 즐길수 있는 공간입니다.

 

 

2층에 마련된 '자동차 경주의 세계'입니다.

빠른 속도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반영하며 발전해 온 자동차경주의 역사를 살펴볼수 있습니다.

 

 

 

전시장을 돌아보고 그 가운데 (주관적으로) 특히 관심있게 본 몇가지 전시물들을 기록으로 남겨둘까 합니다.

먼저 로비 전시장 입구에 세워저 있는 자동차(?)입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1482년 아이디어 스케치로 남겨놓은 태엽자동차 랍니다.

교통박물관이 다빈치의 스케치에 근거해서 2007년 실물로 재현해 놓았답니다.

정말 태엽을 감아 스스로 움직이고 정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리고, 1986년 독일의 칼 벤츠가 제작했다는 세계 최초의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랍니다.

1기통 짜리 자동차 였답니다.

걷는게 훨씬 빠를듯 싶습니다.

 

 

 

 

미국의 월트 디즈니사(社)의 1969년작 코믹액션영화, '러브 버그(The Love Bug)'에 등장했던 실물모델, 폭스바겐 '비틀'이랍니다.

'허비(Herbee)'라는 애칭으로 등장했었지요?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하늘도 날고 했었지요?

사람의  마음을 가진 자동차 였습니다.

 

 

 

 

그리고 이 하얀색의 멋진 스포츠카가 국산 자동차 였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아마도 많지는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1993년작  쌍용자동차의 '칼리스타(Kallista)' 입니다. 

 

 

그리스어로 '작고 예쁘다'는 뜻의 이 '칼리스타'는 클래식카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는 고전적인 스타일과

 현대적인 기술을 조합해서 영국의 '팬더(Panther)사가 제작했던 모델이었답니다.

1930년대 후반 인기를 누렸던 명차 재규어 SS100의 모습을 계승했고 부품은 대부분 포드제를 사용했답니다.

펜더사는 1981년 한국의 진도그룹에 인수되었고 1887년 다시 쌍용자동차에 넘겨 젔습니다.

쌍용자동차는 1992년 부터 3년간 78대의 '칼리스타'를 생산 했었지요. 

당시 우리나라의 일간지들이 세계적인 명차를 우리가 생산한다고 대서특필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 많이 판매되지는 않았답니다.

90년대 초반가격으로 3천만원대 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엄청나게 비싸기는 했었지요.

 

그리고 이어서, 또 관심있게 관찰했던 주 전시장의 '코리언 코너'입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초창기 모델들이 전시되어 있어 반가웠습니다.

최초의 국산 자동차 '시발'을 위시해서 '포니'까지 6대의 국산자동차들이 반가웠습니다.

먼저 한국 최초의 국산 자동차 '시발(始發)'입니다.

 

 

1955년 9월 국제차량주식회사에서 만들어 낸 최초의 국산 자동차 였습니다.

국산 1호엔진에 수공으로 제작한 지프형태의 2도어 차체였지요.

수공으로 제작했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만 사실은 망치 등으로 철판을 두들겨 펴서 만들었다고 했지요.

엔진은 6.25한국동란 직후라 유난히도 많이 굴러다니던 미군 지프의 것을 그대로 모방을 했었고

전진3단 후진1단의 변속기는 미군용품을 재생해서 사용을 했습니다.

처음 시작한다는 의미로 차명을 시발(始發)이라고 했고 '시-바 ㄹ'로 표기를 했었지요.

같은해 10월 해방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구요.

주로 택시로 많이 사용되었고 그래서 '시발택시'라고들 불렀습니다.

 

1962년 일본 닛산의 '블루버드'가 '새나라'라는 이름으로 조립생산을 시작합니다.

관공서등 주요 정부기관에서 관용차로 주로 사용하게 되면서 '시발'의 판매가 크게 줄었고

국제자동차 주식회사는 1964년 도산을 하게 됩니다.

'시발'의 생산도 중단되고 말았지요.

누적 생산량 3천대 정도였습니다.

 

다음의 3륜차, 기억나고 말구요.

얼마니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운송수단이었는데요.

기아자동차의 세바퀴 화물차 였습니다.

 

 

1962년 기아산업이 일본 마쯔다자동차의 전신인 동양공업과 제휴해서 'K-360' 소형3륜차를 생산합니다.

판매에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966년부터 생산한 적재량 2톤급의 T-2000을 생산하면서 성공을 거둡니다.

전시된 위 3륜차는 1969년부터 생산된 적재량 0.5톤의 'T-600' 입니다.

'T-360'보다 배기량이 약간 더 컸지요.

이 녀석이 쌀, 빵 등 갖가지 생활용품들을 싣고서 좁은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스페어 타이어를 지붕에 얹고 다녔습니다.

1974년까지 모두 7,726대가 팔렸다는 기록입니다.

 

아래 사진의 빨간색 승용차는 신진자동차가 1967년 일본 도요타와  제휴해서 조립,생산을 시작했던 '퍼브리카' 입니다.

우리나라 '마이카'의 효시였지요.

배기량 697cc였으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경차중에서도 경차인데...그래도 당시에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스카프와 선글래스 그리고 하얀 면장갑을 끼고 이 차를 모는 여성 운전자는 당시 장안 최고의 멋쟁이 였으니까요.

 

 

새나라자동차의 부평공장을 인수한 신진자동차가

1967년대 중반부터 코로나, 크라운, 퍼블리카, 랜드크루저 등 도요타 생산 모델들을 조립, 생산 했습니다.

'새나라'를 대신했던 '코로나'는  주로 택시로 많이 사용되었고 '크라운'은 고급승용차로 부유층의 자가용으로들 쓰였지요

'랜드크루저'는 건설, 산업현장의 업무용으로 사용되었구요.

당시 경제수준으로 볼때 자가용은 고가의 사치품이어서

비록 소형이기는 했지만 '코로나'는  기사가 운전하며 주인을 모시는 차량으로 인정받고 있엇습니다.

그에 비해 이 '퍼브리카'는 비교적 저렴해서 손수 운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지요.

돌이켜 보면, 어린 나이로 직장 초년생이었던 나도 이 차를 사겠다고 저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돈을 모두 모아 놓고도 용단을 내리지 못했었지요.

당시 사회분위기는 공무원이던 나로 하여금 자가용을 살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지 않았던 거지요.

나의 자가용족 입문은 그로부터 5년후 미국생활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됩니다.

과분하게도 '뷰익(Buick,GM)'의 8기통짜리 승용차 '리갈(Regal)'이 첫 차입니다. 

귀국한 1976년 , 신진자동차의 '뉴 코티나'가 내 생애 3번째 차이면서 국내차로는 첫번째 차가 되구요.

퍼브리카를 앞에 서니 옛생각이  절로 나네요.

'뉴 코티나' 도  전시장에 한대쯤 있었으면 싶었는데 불행이도 없네요.

 

아래 사진의 초록색 차는 'GMK 새마을 픽업'입니다.

 

 

왜 차명앞에 'GMK'가 붙었느냐하면 신진자동차가 토요타와 결별하고 1972년  미국의 GM과 제휴하면서

'제너럴 모터즈 코리아(GMK)'를 세워 이 차를 생산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GMK는 호주 홀덴사의 소형승용차를 '시보레1700'이라는 차명으로 조립, 생산하고 있었는데

그 차의 엔진과 새시를 이용해서 자체 설계하고 개발한 픽업(Pick up)형 자동차가 되겠습니다.

당시 새마을 운동이 한참때여서 정부의 지원속에 새마을 관련 여러사업들에 유용하게 사용이 되었었지요.

 

 

아래 파란색 승용차가 기아자동차의 '브리사 S1000 ' 입니다.

일본 마쯔다의 '파밀리아'  모델을 기본으로 개발해서 생산한 기아 최초의 승용차 이지요.

 

 

1970년대 초반부터 정부의 국민차 개발의지에 힘입어

기아의 브리사, 현대의 포니, GMK의 제미니가 각각 생산, 판매되기 시작합니다.

3륜차 생산기술의 노하우를 축적해온 기아는 엔진을 비롯해 추진축, 클러치 등을 국산화하여 

1974년 국산화율 63%의 브리사를 생산해 냅니다. 

75년에는 국산화율 77.8%, 76년에는 89.5%까지 끌어 올립니다.

생산 첫해에 617대, 이듬해에는 10,757대를 판매하는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여 '국민차 브리사 시대'를 엽니다.

1973년 불어닥친 오일쇼크 당시는 연료가 적게드는 '경제적인 차', 그리고 단순한 조립차가 아닌

국산화율 90%까지 끌어올린 '애국적인 차'로 평가 받으면서 높은 인기를 누렸지요.

배기량이 985cc였으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경차입니다.

1974년에서 81년까지 생산되면서 31,017대가 팔린 것으로 나옵니다.

 

 

드디어 '포니'입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해 낸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차 이지요.

 

 

1967년에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코티나, 포드20M 등 기술제휴선인 포드의 유럽법인 모델들을 조립, 생산해 오면서

단계적인 기술습득 과정을 거칩니다.

다음 단계는 비싼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고유모델의 개발이었지요.

이태리 디저이너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보디에 일본 미쓰비시의 새턴엔진과 4단 변속기를 얹어

마침내 국산 고유 모델 제1호, '포니'를 셍산해 냅니다.

1974년 토리노 모터쇼를 통해 처음 소개되고 이듬해인 1975년부터 판매에 들어갔고

1976년에는 국산승용차 로는 처음으로 에콰도르에 수출하는 기록을 남기지요.

1982년 포니2가 출시될때까지 기본형인 4도어 세단 외에 웨건, 픽업, 3도어 등 다양한 모델이 출시됩니다.

 

나는 하얀색 포니2의 오너였던 시절이 있었지요.

기흥출고사무실까지 내려와서 차를 인수받아 고속도로를 달려 오르다가 죽전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던 기억이 인수첫날의 기억입니다.

당시 새차는 5천Km까지는 100Km이상 밟으면 않된다고들 했었지요.

조심조심 고속도로를 달렸던 기억입니다.

 

그 많은 국산차들 가운데 겨우 6대가 전부입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우리나라,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 이랍니다.

그런데도, 번적번쩍 빛나는 외국 자동차들 가운데 우리 자동차는 초창기 자동차 겨우 6대가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세워저 있을 뿐입니다.

아니군요, 7대 군요. 쌍용의 칼리스타도 있었으니까.

물론 삼성교통박물관의 책임은 아닙니다.

교통박물관은 현대 자동차들을 전시해 놓은게 아니고 세계 자동차 역사관을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요.

세계자동차 역사가운데 한국의 위치는 당연히 그렇게 구차할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섭섭한 마음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현대자동차의 몫일까요?

한국자동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하나 있어야 되겠습니다.

 

전시관 내부를  전부 둘러보고 밖으로 나옵니다.

처음 전시관으로 들어 설때는 무심하게 보았던 것들이 시선을 끕니다.

은색으로 똑같이 도장을 한 옛날 자동차들이 두곳에 무더기로 세워저 있습니다.

 

단순한 전시물이 아닙니다.

백남준 선생의 설치작품이었군요.

1997년 독일 뮌스터 조각미술제 출품작이라고 하는군요.

미술제에 전시되었던 자동차들을 그대로 옮겨다 박물관 앞마당에 전시 해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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