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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금강산(金剛山) 화암사(禾巖寺)

by 鄭山 2008. 10. 28.

 

설악산 미시령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대명콘도, 일성콘도 등 여러 콘도건물들을 지나서

1991년 8월 세계잼버리대회가 열렸던 설악산 평내들이 오른쪽으로 펼쳐집니다.

대명콘도를 지나 속초쪽으로 빠지는 우측도로를 타고 평내들판을 지나면

길옆에 '금강산 화암사(金剛山禾巖寺)'라고 음각된  큰 입석(入石)이 나옵니다.

'설악산에 웬 금강산 사찰이 있어?'

지나는 이 많지는 않지만, 지나는 이면 거의 모두가 한번씩은 자문해 보는 질문 일터입니다.

화암사쪽으로 방향을 틀고 잘 포장된 왕복2차선 도로를 따라 들어 가다 보면

왼쪽으로 푸른 숲위에 거대한 바위가 보입니다.

무슨 바위인가 궁금했는데, '수(秀)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화강암 암석바위 였습니다.

 

 

'금강산화암사(金剛山禾巖寺)'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위치해 있고

강원도 문화제 자료 제114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화암사'로 들어서는 문입니다.

'금강문'등 중간문 없이 이 문 하나를 통해 사찰로 들어 섭니다.

 

 

들어가는 길 왼쪽 커다란 바위앞에 '부처님과 다섯제자들의 '초전법륜(初轉法輪)' 모습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자연속에 자리잡은 많은사찰들은 거의  계곡을 끼고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나름대로 이름 붙여진 육교를 지나면서 사찰의 주요부분에 닥아 갑니다.

다리이름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화암사'도 역시 계곡넘어 다리건너 저쪽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다리건너 넓은 광장 입구왼편으로 계단 따라 저 위에 대웅전이 보입니다.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후기인 769년(혜공왕5년) 우리나라에 참회불교를 정착시킨

법상종의 개조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하고 화엄사(禾嚴사)라 하였답니다.

호남 제1의 사찰 '금산사(금산사)'에도 진표율사의 흔적이 많았는데 그 분의 발자취가 이곳까지 미쳤군요.

진표율사는 이 절에서 수많은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수많은 불자들을 길러냈다고 했습니다.

1623년(인조 1년)에 소실되어 1625년 (인조3년) 다시 지은후에도 몇차례의 소실과 중건이 거듭되었답니다.

1912년 이름을 화암사(禾巖寺)로 고쳤고, 1915년 소실된후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그후 법당만 다시 지었다네요.

경내의 현재 건물들은 1991년 이곳 신평들에서 개최되었던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의 개최준비를 위한

주변 정비계획에따라 기존 법당을 철거하고 다시 지은 것이랍니다.

현재 경내에는 삼성각, 미타암, 법당, 명부전, 설법당, 요사채, 종각, 일주문 등의 건물이 조성되어 있답니다.

사찰입구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부도 15기가 남아 있구요.

 

계단위로 종각과 대웅전 ,요사체가 보입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대웅전 옆으로 명부전도 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입니다.

여늬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지장보살(地藏寶薩)이 모셔저 있고 명부10왕(冥府十王)들도 모셔저 있습니다.

 

 

 

 

769년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화엄경'을 설파하며 '화엄사(禾嚴寺)라 했던 사찰의 공식명칭을

1912년경부터 바위 암(巖)자,화암사(禾巖寺)로 고쳐부르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화암사 남쪽 300m지점에 우뚝 솟은 왕관모양의 예사롭지 않은 모양새의 '수(秀)바위'에 얽힌

전설 때문이랍니다.

진표율사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수바위에서 좌선 수도를 했으며

바위 꼭대기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작은 우물이 있는데 그곳에서 기우제도 지냈답니다.

한편, 절이 민가(부락)와 멀어 수행하는 스님들이 시주를 구해 공양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네요.

몸은 도(道)를 얻는 법기(法器)라지만 , 필요한 양식을 구하느라 수행에만 몰두하기가 힘들었답니다.

수행에 열심이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수바위에 있는 작은 바위굴을 지팡이로 세번 두드리면 쌀이 나올 것이니 그 공양미로 열심히 수행에 정진하라고 했다는 군요.

다음날 아침, 두 스님이 꿈속의 노인이 시키는대로 했더니 정말로 쌀이 나왔다는 얘기입니다.

지금도 수바위를 찾는 신도들과 스님들에 따르면 수바위에서 기도를 한후 꿈에서 전설속의 노인을

만났다고 한다네요.(이 부분은 믿거나 말거나....)

 

 

 

 

설악산위에 위치한 사찰을 어째서 '금강산(金剛山) 화암사(禾巖寺)'라 부르는지

그 연유를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주지스님이 나오기에 물어 보았습니다.

대웅전 앞쪽으로 안내를 하시더니 대웅전 지붕위로 보이는 저 산봉우리가

금강산 산줄기의 맨남쪽 봉우리인 '신선봉(神仙峰)'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화암사의 삼성각(三聖閣)이  금강산 이 시작하는 '신선봉' 줄기 끝에 세워저 있다는 겄이지요.

 

 

 

대웅전 왼쪽으로 '삼성각'으로 오르는 '금강산문(金剛山門)'이 보입니다.

 

 

 

 

삼성각(三聖閣)입니다.

중앙에 여늬 삼성각들과 마찬가지로 삼신(三神- 獨覺 ,山神,七星神)을 모시고

좌우측 벽면에는 금강산 천선대, 상팔달, 세전봉, 삼선대 등 금강산의 이채로운 풍경들이 그려저 있습니다.

외부벽면에도 돌아 가면서 금강산 풍경들이 그려저 있구요.

이것이 '화암사'가 금강산 1만2천봉8만9암자중 남쪽에서 시작되는  신선봉, 첯 암자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변의 주민들과 신도들도 '삼성각'이 금강산이 시작되는 신선봉 바로 아래 세워저 있어서

매우 영험하다고들 믿고 있답니다. 

 

 

 

 

 

 

지금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금강산은 북쪽, 설악산은 남쪽으로 나누어 생각하지만

사실은 '미시령'에서 '신선봉', '대관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은 원래가  '금강산' 자락이 맞습니다.

금강산 1만2천봉가운데 마지막 남쪽 봉우리가 '신선봉'이고

그 아래쪽에 위치한 '화암사'가  '금강산 화암사'인것도 맞습니다.

'금강산''이나 '설악산'이나 약1억8천만년전 땅속의 마그마가 솟구치다가 지표아래에서 식은 화강암이

그 기반입니다. ''금강산'과 '설악산'은 맞수이면서 형제산입니다.

"금강은 절묘하지만 장엄하지 않고 지리산은 웅장하지만 절묘하지 않다.   설악은 두가지를 고루 갖춘 명산

이다."라는 어느분의 말.공감이 갑니다.

설악산에 웬 '금강산 화암사'냐고 이상히 여겼던 내가 잘못이었다 싶습니다.

설악산보다 금강산 줄기라고 말하는게 더 어필할듯 싶어서

설익은 명분을 갖다 댄게 아니냐고 의구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싶습니다.

설악산의 시작이 금강산이고 금강산의 시작이 설악산입니다.

설악산도 금강산도 백두대간 줄기이고,  나뉘어 있는게 아니라 연결된 하나입니다.

 

'설법당'과 코끼리들이 받치고 있는 분수입니다.

감로수를 지키는 동자의 표정이 너무 해학적입니다. 

 

 

 

 

'화암사'를 뒤로 하고 입구 '일주문'쪽으로 되돌아 나오다가 다시 맞난 사찰 입구의 부도(浮屠)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되어진 것으로 본답니다 .

춘담대법사탑을 비롯해서 화곡, 영담, 원봉, 청암스님 등의 부도 15기가 모셔저 있답니다.

 

...

 

설악산 낙산사 화재는 정말 마음아픈 일이었지요.

그뒤로 설악산 주변의 사찰들에 퇴역한 소방차들이 배치되었다는 보도를 들었는데....

이 소방차도 그들 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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