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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화성 갓등이 왕림성당

by 鄭山 2009. 2. 9.

 

 

 

어제 주일미사는 자동차로 50분을 달려서

경기도 화성 봉담 왕림리의 '왕림성당'에서 가졌습니다.

성지순례도 겸해서 이곳저곳 성당에서 미사를 갖고는 하는데

어제는 '왕림성당'으로 향했습니다.

'한수(漢水)이남 경기도 땅 최초의 본당이며 박해시대 때 2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유서깊은 성당'이라는 설명이 발길을 그쪽으로 향하게 한 까닭이었지요.

작으면서도 단단한 고풍(古風)의 성당이었습니다.

 

'갓등이 왕림성당'이라고 했습니다.

'갓등이'가 무슨 뜻일까요?

주보 뒷면을 보니 설명이 나와 있군요.

'갓등이'는 신부님이라는 의미의  '갓을 쓴 등불'이라는 뜻으로

박해시대 때 왕림 교우들이 사용하던 은어'라고 설명되어 있네요.

 

이곳 '왕림'은 수원으로 향하는 산길 길목이었고 교우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박해시대 때 전교여행을 다니던 선교자들이 많이 이용했던 곳이라고 하는군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만아니라 교우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신변의 안전을 도모할수 있어서 였다구요.

엥베르(Imbert, 范世亨)주교도 1839년 기해박해 때 이곳 공소에세서 은신을 했답니다.

 

 

 

 

이곳에는, 1866년 병인(丙寅)박해를 전후해서 복음이 전해젔고

'치명일기'에 수록된 '최 야고보'와 '한 안드레아' 등 순교자들을 낳은 곳이라고 하는 군요.

 

1888년 7월 안드레(J. Andre,안고학)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해 오고

이듬해 200명을 수용할수있는 초가성당을 건축했다고 합니다.

한수(漢水)이남 경기도 땅  최초의 본당입니다.

120년의 역사의 유서깊은 성당이 되겠습니다.

당시에는, 수원군(현 화성군), 용인군, 안성군, 평택군 등 네곳의 공소 24개소와

신자 1,790명을 관할했던 중심본당 이었다니 감개가 남다름니다.

 

 

 

 

오래된 성당이어서 그러할까요?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 가운데 유난히도 노인분들이 많으시더군요.

오는 봄부터는 '노인성경교실'과 '노인미술교실'을 새롭게 열겠고

내년부터는 '노인대학'도 개설 하겠노라고 신부님이 공지를 하네요.

역사만큼 연륜도 함께 느끼게하는 성당이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는 남자 노인 신자분께서 머리숙여 인사하는 방향(우측)에 예수님 동상이 모셔저 있고

그 반대편(성당을 가운데로 해서 왼쪽)에 성모상이 모셔저 있습니다.

 

 

 

 

특별히 '갓등이'라는 은어를 성당명 앞에 붙일 정도의 역사성 이 있고 2명의 순교자를 내었다면

순교자 현양탑을 위시해서 엥베르 주교의 동상, 순교자들의 기록 등등

역사적 유물들을 갖추고  성지(聖地) 모습으로 다듬어 놓았으련만 

이곳 '갓등이 왕림성당'은 그저 수수한 시골 성당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수원교구가 선정해 놓은 성지 가운데 한 곳이라는 기록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이곳이 특별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겸손한 시골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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