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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한국천주교 창립선조 묘역

by 鄭山 2009. 2. 1.

 

 

 

  

매해 년초 1월달이면  한번씩 천진암 성지(天眞菴聖地)를 찾아 미사에 참여하곤 합니다.

금년에는 1월달을 넘겨 2월 초하룻날 이곳을 찾게 되었네요.

미사시간 한시간 전에 도착을 했습니다.

오늘은 천진암 옛터이자 한국천주교 창립선조들의 묘소가 자리한

묘역(墓域)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100년계획 대성당 현장에서 부터 500m 산속길을 따라 오릅니다.

 

 

 

묘역으로 향하는 언덕길 입구에 세워저있는 천진암 성지 기념비(天眞菴聖地紀念碑)입니다.

 

 

기념비 전면에는

'한국천주교발상지천진암지(韓國天主敎發祥地天眞菴地)'

'한국천주교회창립성조이벽(韓國天主敎會創立聖祖李壁)'

'한국천주교창립이백년기념(韓國天主敎創始二百年紀念)'이라고 음각되어 있습니다.

 

계속에서 계곡을 따라 오릅니다.

 

 

계곡 오른편에 지금은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는 비교적 평평한  땅이 나옵니다.

이벽 선생의 강학당(講學堂)자리 랍니다.

 

 

'천진암강학당지(天眞菴講學堂址)'라 쓰여진 기념표석(紀念標石)이 세워저 있습니다.

선비들이 무리지어 모여들면 좀더 산으로 올라 깊숙히 위치한  독서처(讀書處)가 비좁아서

이곳의 여러채 객사(客舍)와 서당(書堂)을 강학당(講學堂)으로 해서 천주교 강학회(講學會)를

개최했었다고 하는 군요.

이승훈 진사가 베이징에서 영세 귀국한 1784년 초여름부터는 수표동 이벽 선생의 자택으로 옮겨

강학회등을 열었고 이듬해 1885년 봄에는 명례동(明禮洞) 김범우(金範禹, 통역관)선생의 집으로 옮겨

집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명례방의 집회를 한국최초의 천주교회로 칩니다.

 

강학당지(講學堂址)를 옆으로 하고 언덕길 따라  오르니  건너편 저쪽 언덕위에

다섯개의 묘(墓)가 나란히 보입니다.

천주교회 창립선조 묘역입니다.

 

 

'빙천터'라고 이름한 약수터가 오른쪽으로 있습니다.

어름처럼 시원한 샘(氷泉)이라는 뜻인가 보지요?

약수 한모금 마시고 계단으로 오릅니다.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韓國天主敎會 創立先祖) 5위의 묘역(墓域)입니다.

광암 이벽 선생의 묘를 가운데로 해서 왼쪽에 만천 이승훈,선암 정약종 선생의 묘가

그리고 오른쪽으로 직암 권일신, 녹암 권철신 선생의 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 천진암이 사적지로 조성되던 1979년, 경기도 포천에서 이벽선생의 유해가

이곳으로 이장되어 옵니다.

그리고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한 1981년,  화성군 반월면에서 정약종 선생의 유해가,

인천 만수동에서 이승훈 선생의 유해가, 양평군 강서면 효자봉 자락에서 권철신, 권일신 선생의 유해가

각각 이벽 선생의 묘소 옆으로 나란히 옮겨옵니다. 

 

 

광암(曠菴) 이벽(李檗,세자 요한) 성조(聖祖)의 묘(墓)입니다. 

 

이벽 선생은 1754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서 1785년 을사박해(乙巳迫害)때 가내 연금상태에서

아사벌(餓死罰)로 단식순교(斷食殉敎)합니다.

조선 후기학자로서 당시 사회상과 주자학적 이념의 모순을 깨닫고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게 되면서

청나라에서 들어온 서학서(西學書)들을 탐독, 한국천주교 교리뿐만 아니라 서구 과학문명에 대한

깊은 지식을 쌓음으로서 이 땅에 천주교를 수용하는 기반을 다짐니다.

당대의 대학자 권철신 선생을 위시해서 이승훈, 정약종 선생등 후학들과 더불어

이 땅에 천주교의 기초을 만듭니다.

한국천주교의 시조(始祖)이지요.

 

 

 만천(蔓川)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의 묘(墓)입니다.

 

1756년 서울 중림동에서 태어나 성균관 진사(進士)에 오르나  사임하고 학문에만 정진하던중

북경 천주교회로 파견되어 베이징 북천주당(北天主堂) 루이그라몽(染棟材)신부에게서 영세를 받고

귀국한 한국최초의 영세자입니다.

1784년 귀국하면서 수십종의 교리서적과 십자고상(十字苦像), 묵주, 성화등을 갖고 들어와서

이벽,최인길과 함께 권일신, 정약용 형제등을 대상으로 전도하며 영세를 줍니다.

다음해 명례동(明禮洞) 김범우(金範禹, 통역관)선생의 집에 한국 최초의 천주교회를 창설하지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순교(斬首殉敎)합니다.

 

선암(選菴) 정약종(丁若鐘,아오스딩)의 묘(墓)입니다.

 

1760년 경기도 마재에서 출생하시고 서울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순교(斬首殉敎)합니다.

역시 조선후기의 학자입니다.

정약용(丁若鏞)선생의 형이지요.

여러차레에 걸친 천주교탄압으로 형제와 친구들이 배교하는 와중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습니다.

1794년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가 입국하자 그를 보호하며 활동을 했고

1789년 명도회(明道會)의 회장이 되어 교리연구와 전교에 힘쓰다가

1801년 신유박해때 이승훈 등과 함께 체포되어 순교합니다.

 

직암(稷菴)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묘(墓)입니다.

 

조선후기의 학자로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권철신 선생의 아우입니다.

1787년 교인들끼리 모여 직제를 결정할때 주교(主敎)가 되어 사목활동을 벌렸으나

1789년 베이징의 주교 구베아(Gouvea)로부터 교황이 임명하지 않은 주교는 성사를 집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즉시 평신도로 되돌아와 포교에 힘쓰다가 1791년 신해박해 당시 순교합니다.

 

녹암(鹿菴)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의 묘(墓)입니다.

 

조선후기의 학자로 권일신 선생의 형입니다.

천진암에서 이벽 선생과 함께 서학교리를 주도하고

훗날 김범우 선생댁 집회에도 참여하는등 천주학의 실천운동에 적극 참여합니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순교하지요.

 

묘역 뒤편에 표석(標石)이 보입니다.

'이벽성조독서처지(李壁聖祖讀書處址)'라 쓰여진 기념표석(紀念標石)입니다.

.

 

이벽 선생의 독서처(獨書處) 자리랍니다.

독서처(讀書處)라 함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일정한 장소를 마련, 그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장기간, 때로는 몇년씩 숙식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장소를 말하지요.

오늘로 말하면 연구소(硏究所)와 비슷한 처소였습니다.

이벽 선생께서는 1770년 15세 때부터 1784년 15년간 이곳에 독서처를 마련 수도하셨는데  

1777년 부터는 여기서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권상학, 김원성, 이총억 등 젊은 선비들과 천주학을 연구했고 때로는 권철신 같은 당시 저명한 원로학자도 참석하는 강학회도 열곤 했었답니다.

바로 한국천주교회의 산실(産室)인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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