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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한덕골 사적지

by 鄭山 2010. 12. 20.

 

 

 

가까이 위치한 '천리요셉성당'에서 관리하고 있는 '한덕골(閑德洞)성지' 입니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의 설명문을 그대로 옮김니다.

 

"이곳 용인시 이동면 묵4리(龍仁 二東面 墨里)한덕골은 ,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들리 박해를 피해 모여들어

교우촌(敎友村)을 이루고 살았던 사적지이다.

 

한국인 첫 사제인 성 김대건(金大建,안드레아,1821-1846)신부 가족들은 박해를 피해,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를 거쳐 이곳으로 피난와서, 처음에는 기거할 집이 없어 마을 근처 성애골(지금은 매몰되었음) 골짜기에 들어가

산(生)나무와 산나무에 칡으로 얽어매고 억새풀을 덮고서 살았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원래  한덕골은 , 윗마을 팡파리골을 합쳐서 부르던 이름이며, 그중 교우촌은 윗마을 팡파리골이다.

족보에 의하면 성 김대건 신부의 조부 김택현(金澤鉉,1766-17830)과 숙부 김제철(金濟哲,1803-1835)의 묘가

한덕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김대건 신부 가족들의 한덕골 피난설을 뒷바침해주고 있다.

 

한국인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崔良業)신부는 1849년 4월15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이듬해 귀국하여 이곳에 와서,

중백부(중백부 崔榮謙)와 어린 동생들을 눈물로 상봉하였다. 최신부는 그 이후에도 가끔 이곳에 들려 성사를 주곤 하였다.

 

이곳 한덕골 출신 순교자로는 성 김대건 신부와 부친 김제준(金濟俊,이냐시오,1795-1839) 성인을 비롯하여,

김시몬(1870년 순교, 40세), 김마리아(1866년 순교,42세)등이 있다.

 

신잉때문에 고향과 가산을 다 버리고 이곳에 피난와서,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며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신자 본분을 굳게 지키며 사셨던 신앙 선조들의 기도소리가 지금도 바람을 타고 은은히 들려오는 듯 하다.

 200년 9월 16일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 기념일에

천주교 수원교구 천리요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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