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초남이 성지'를 다녀 왔습니다.
호남고속도로와 전주, 익산이 갈라지는 곳에 '초남리'라 불리우는 마을이 있습니다.
호남의 첫 사도이자 한국 천주교회 발상기의 주요 지도자였던 호남의 갑부,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생가터이며
동정부부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의 생가터입니다.
그리고 중국인 주(周)문모 야고보 신부의 첫미사 봉헌터이기도 하구요.
역사적인 성지입니다.
유항검의 생가터입니다.
17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기의 지도급 인물이며 호남지방의 첫 복음전도자인 유항검의 생가터입니다.
또 가성직자단의 신부였던 그가 성사를 집전하고 미사를 가졌던 곳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그의 장자인 유중철(요한)과 자부인 이순이(루갈다)가 동정부부생활을 하면서
완덕(完德)을 실천하던 수도장이기도 했구요.
신유박해(1801년)때 유항검은 대역부도죄로 처형을 받고 가족들은 연좌형에 처해집니다.
그리고 유항검의 집은 파가저택(破家渚宅)이라고 해서
역적의 집은 헐고 그 터는 물을 대어 못을 만드는 형벌이 집행되었습니다.
이곳은 동정부부의 생가터이기도 합니다.
유중철(요한)은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장남으로 6살때 아버지와 함께 세례를 받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신앙심이 아주 깊었답니다.
1795년 중국인 주문모신부가 이곳 초남이를 방문했을때
요한은 주신부에게 자신을 온점히 하느님께 봉헌하여 한 평생을 동정지킬 것을 고백하였다구요..
한편, 왕가집안으로 178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루갈다는
14살 되던해 첫영성체를 하면서 한 평생 성모 마리아처럼 동정을 지키며 살기로 결심한 뜻을
주신부에게 알렸답니다.
주신부는 이들이 동정생활을 유지할수 있는 방법으로 결혼의 형식을 취하고
서로 남매처럼 살도록 주선해 주었다구요.
이들은 4년동안 동정을 지키며 살다가 요한은 1801년11월 전주감옥에서,
루갈다는 12월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를 했답니다
이들 일가족 모두는 훗날,1914년, 전주 전동성당 보두네(Baudounet) 초대신부 와 신자들에 의해
치명자산으로 옮겨 묻힙니다.
마루를 가운데로 해서 오른쪽이 요한의 방이고 왼쪽이 루갈다의 방입니다.
루갈다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수많은 유혹을 어렵게 이겨 가면서
둘은 동정을 지켜 나갔노라고 쓰여저 있습니다.
완덕(完德)을 실천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행랑채는 시아버지 유항검이 감히 왕손을 며느리로 맞으면서 지은 별채가 되겠습니다.
이 루갈다가 이곳 초남이로 시집온 해(1797년)을 기념하여 서울 봉천동성당 교우들의 도움으로 복원,
2006년 10월23일 교구장 이 빈센치오가 축성을 했다는 안내석이 이 행랑채 앞에 세워저 있더구요.
동정녀 이 루갈다가 어머님께 보냈다는 편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항검의 생가터였던 연못을 가운데로 하고 야외미사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했던 같은 시간에 서울에서 순례를 오셨다는 수녀님들 여러분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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