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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오사카 성(城)

by 鄭山 2007. 6. 6.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열도를 통일한뒤 3년간의 공사끝에 1586년 완공한 성(城)입니다.

전란으로 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버렸는데, '도구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재건이 됩니다만,

과거의 성에 비해 1/5밖에 되지않는 크기랍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오사카' 제일의 관광명소, '오스카 성'의 '천수각(天守閣)'입니다.

예날의 목조건물이 아니고 1931년 박물관으로 재설계되어 복원된 콘크리트 건물입니다.

일본관광포스터에 '후지산'과 함께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건물이지요.

 

8층전망대를 제외한 나머지 층모두에  '도요도미 히데요시'와 '오스카성'에 관한 역사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읍니다.

먼저 전망대까지 에레베이터로 올라가 '오사카' 시내를 조망하고, 이어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

각개층의 자료들을 보실수 있읍니다.

 

8층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오사카 '시내 일부입니다.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황금 호랑이상입니다.

'천수각 '8층 전면을 올려다 보면, 서로를 향해 포효하는 모습의 두마리 황금호랑이 상(像)이

부각되어 있읍니다..

바로 그 호랑이 상입니다.

일본열도에는 없는 호랑이가 어찌하여 '오사카성 천수각'  제일 높은 곳에 부각되어 있을까요?

임진왜란 당시 조선땅을 침공했던 왜군 장수들의 눈에 비친 조선호랑이는 용맹과 경이, 그리고

위엄의 표상이었답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에게 호랑이 가죽이 바쳐지고, 절대 위엄의 표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 일본에게 있어 우리 조선은, 한참 앞서가는 동경의 나라였을지도 모르지요.

.

 

엄청나게 큰 돌입니다.  돌이 아니라 암석(岩石)입니다. '오사카성'입구에서 '천수각'으로 향하는 길목에 세워저 있읍니다.

'오사카성'을 축성할 당시,지방 영주들이 '도요도미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서하며 경쟁하듯 옮겨다

놓은 돌들중 하나랍니다.

이 돌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왜군 선봉장 이며 '구마모토(熊本)' 영주였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옮겨다 놓은 돌이랍니다.

어떻게 이 큰 돌을 운반해 올수 있었는지, 현대 과학으로도 해석이 않되는 불가사이한 일이라구요.

 

 

일본의 성곽 축조 방식은 우리와 크게 달라 보입니다.

다듬어진 큰 돌들과 작은 돌들이 또다른 모양새로 정교하게 얼켜 있읍니다.

 

 

 

그리고성벽을 따라 축조된 해자(垓字)입니다. 외적의 침공을 막기위해 성(城)주변에 파놓은 못이지요.

유럽의 성(城)들도 대부분 이런 해자들이 축조되어 있던 걸로 기억됩니다.

'오사카성'에는 이런 해자가 안팎에 걸쳐 이중으로 축성되어 있었읍니다. 

 

 

 

 

내란당시, 두곳의 해자를 어렵게 건너 성곽을 타오르려 했을 '도쿠가와'군(軍) 무사들이 얼마나 고전을

했을까?

수성(守城)인원의 10배가 넘는 병력을 동원해도 공략이 힘들다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말이 맞겠다

싶었읍니다.

 

 

 

'오사카성'의 우리와의 악연은 임진왜란으로만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같게한 또 하나의 건물이

이 '오사카성'안에 또 있었읍니다.

지금은 시립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벽돌건물입니다.

그 악명높던 일본 육군 총사령부 건물이 이 '오사카성' 안에 자리잡고 있었읍니다.

 

 

'오사카성'은,그러니까,  임진왜란, 정유재란 그리고  조선합방의 근거지였던 검니다.

한국관광객들에게 있어 '오사카성'은, 단순히, 관광길에  �아보는 일본의 역사 유적지가  아니라,

한일관계의 과거 악연을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해보는 학습의 현장으로 삼아야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읍니다.

 

 

'오스카성'으로 향하는 입구에 신사(神社)가 하나 있읍니다.

'도유쿠니 신사'(豊國神社)입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를 신(神)으로 모신다는 일종의 사당입니다.

 

 

 

'토리이(烏居-신사 입구의 문)' 저쪽에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동상이 보입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임진왜란을 통해 우리에게는 아주 나쁜 인물로 부각되어 있지요.

그러나 일본에서는 '신(神)'입니다.

그가 누구였는지, 국사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까요?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휘하에서 두각을 나태내 중용되지요.

또다린 가신(家臣) '아케치 미쓰히데(明知光秀)'의 모반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할복 자살하자,

부하들을 이끌고 돌아와 반군을 진압하고  실권을 장악합니다.

그후 반대세력들을 모두 굴복시키고 일본을 통일, '모모야마(桃山)시대'를 열지 않습니까? 

미천한 집안출신으로, 일본역사에 출중한 인물로 평가되던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된 그는

국민들의 존경심을  끌어 모으고자 두번에 걸친 조선 정벌전쟁을 일으킵니다.

1952년 '임지왜란'과 1957년 '정유재란'입니다.

두번에 걸친 조선전쟁에 국력만 낭비하고, 정유재란 난중에 그만 병사하고 맙니다.

쇠락해진 '히데요시 '가문은, 결과적으로, 2대 50년을 이어가지 못하고, '도쿠가와'군(軍)병사들에게

멸족을 당하고 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