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산중턱에 자리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습니다.
지난해 철거를 한 옛 기념관 의 뒷편 광장 자리에 세워저 있군요.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중국 뤼순감옥에서 31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100주기를 기념해서 새롭게 건립한 기념관이라고 했습니다.
위엄을 살린다고 흔히들 돌을 쓰는 여늬 석조(石造)기념관들과는 달리 반투명 유리재질로 덮인 이채로운 모습니다.
파격적입니다.그리고 단정합니다.
12개의 반투명 네모 기둥형상의 건물입니다.
정면 우측상단의 반투명 유리뒤로 '안중근(安重根)'이라는 한자명(韓字名)이 없었으면
누가 이 건물을 안(安)의사의 기념관으로 보겠느가 싶습니다.
12개의 기둥형상은 1909년 무명지(無名指, 넷째손가락)을 끊고 대한독립을 맹세했던 12인의 단지동맹을 상징한다구요.
안(安)의사와 뜻을 함께했던 11분도 기억하게 해주는 상징이 되겠습니다.
건물을 향해 정면으로 출입구가 없습니다.
건물을 바라보며 우측 완만한 경사로를 걸어 내려가야 입구가 나옵니다.
안(安)의사의 유묵(遺墨)들이 음각된 벽을 따라서 천천히 내려갑니다.
경건한 추모공간으로 들어서는 의도된 길입니다.
안(安)의사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숙연해 집니다.
지하1층의 추모공간으로 들어서면 안(安)의사의 좌상(座像)이 관람객들을 맞습니다.
방문한 많은 학생들이 안(安)의사의 이 좌상을 배경으로 해서 기념사진들을 찍는군요.
일단의 학생그룹들이 모두 지나갈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서야 안(安)의사의 모습과 혈서(血書)를 카메라에 담을수 있었습니다.
전시공간도 여늬 공간과 다르게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사각형 넓은 전시실이 아니라 복도형 전시공간을 따라 물흐르듯 층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관람통로가 한쪽으로만 흐르고 있다보니 관람객들간의 충돌은 전혀 없겠군요.
기념관 외형도 파격적이었는데 전시공간의 배치도 세련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전시물들 가운데는 할빈역의 저격장면 한 컷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렌즈가 광각이 아니어서 전체화면을 한 장에 담을수는 없었지만..)
안(安)의사의 시선(視線)방향이 이또히로부미쪽을 향하고 있지 않고 좌측 빈공간을 응시하고 있네요.
안(安)의사의 몸체를 조금 오른쪽으로 틀어놓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총구(銃口)방향이 틀어 질레나?
설계자 ' 김선현'님이 '문화부 2010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구요.
그리고 이 건물은 제28회 서울특별시건축상'을 받았군요.
상을 받을 만한 설계와 건물이다 싶습니다.
그런데....기념관 건립(준공)일자는 10월26일이고 건축상 수상일자는 그보다 훨씬 앞서 10월5일 이군요.
그러니까 준공도 되기전에 심사를 했고 또 수상을 했군요.
그렇다고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수상을 받을 만한 건물이니까요.
기념관 입구에 세워저 있는 안중근의사의 동상입니다.
그리고 기년관 앞마당에 세워저 있는 기념조형물입니다.
'민족정기(民族正氣)의 전당(殿堂)'표지석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입니다.
원래 이곳에 세워저 있던 기념관을 착공(1969년 10월)하면서 세워진 41년전의 표지석이로군요.
구(舊)기념관은 철거를 했고 그 앞에 세워저 있던 일군의 유묵석탑(遺默石塔)들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거진 나무로 커진 고목들과 어울려 옛모습이 역연합니다.
원래의 기념관은 박 전대통령의 지시로 이곳에 세워지게 되었었지요.
각계의 지원금과 국민의 성금으로 이곳에 건립이 되었습니다.
1970년10월26일날 준공이 되었지요.
재건축된 기념관 준공식이 2010년 10월26일 치루어젔으니까
40년전의 그날을 기억하기 위함이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