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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서동요비(薯童謠碑)

by 鄭山 2008. 6. 24.

 

 

 

충남 부여 궁남지(宮南池) 한켠에 세워저 있는 서동요비(薯童謠碑)입니다.

신라 선화공주(善花公主)와 결혼을 한 백제 무왕(武王)의 '서동요(薯童謠)'를 기념하는

시비(詩碑) 입니다.

 

 

시비(詩碑)에 새겨진 설명의 글, 가까이 읽어 볼까요?

 

    "여기는 옛 백제의 서울 시비의 궁남지이다. 삼국유사에 이 남지가에 살던 과부가 못의 용과 사랑하여

낳은 이가 서동이며 나중에 백제의 무왕(武王)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때 마를 캐어 생업을

삼았으므로 나랏사람이 맛똥薯童이라 불렀다. 이때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공주 선호(善花)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의 서울로 들어가 마로써 아이들을 꾀어 끌어 자작의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서동의 

노래는 무심한 아이들의 입을 빌어 온 서라벌 장안에 퍼진 끝에 신라 대궐에 까지 들리게 되었다. 조정의 백관은 노래의 내용을 문제삼아 선화공주를 귀양 보내게 하였다. 귀양가는 도중 서동이 공주를

배행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사랑하여 부부가 되었다. 당초 서동이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노래가

서동요로서 현존하는 향가로는 그중 오랜 노래이다. 대체의 뜻은 다음과 같다.

           '선화공주는 맛똥방을 남 그윽히 열어 두고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리하여 서동은 선화공주와 같이 백제에와서 나랏사람의 신망을 얻어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다고 한다. 가난하되 슬기로운 무명의 소년이 미모의 공주와  사랑을 이루고 더 없이 높은 임금의 자리까지

오를수 있었다고 하는 서동의 이야기를 통해 백제인의 낭만을 되새기고 그 뜻을 기록하노니

뜻이 있는 이 걸음을 멈추고 이곳 남지변 옛자취를 눈 앞에 그리소서.

              문학박사 황패강이 글을 짓고 문학박사 김동욱이 글씨를 쓰고

              부여군과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에서 공동으로 세우다.

                                                           1987년 5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