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사비시기 불교와 그 중심에 있었던 정림사(定林寺)를 주제로 해서
백제 불교문화를 재조명하자는 뜻에서 이박물관을 건립했다는 내용이네요.
백제문화를 종합적으로 재조명한 '부여박물관'과는 또다른 의미라는 이야기지요.
부여박물관에서 멀지 않습니다.
박물관 건축양식도 백제문화권 답게 독특하네요.
처음 박물관 외관을 원거리에서 처다보았을 때는 '일본사찰풍 건물'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렇다고 부여가 박물관을 건축는데 일본 사찰의 건축양식을 참고한 모양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일본의 사찰들이 백제의 저러한 사찰건축양식을 그대로 본떠 갔던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는 말씀이지요.
백제의 후예들이 일본에 건너가서 백제풍의 건물양식들을 일본땅에 심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는 말씀이지요..
백제의 불심(佛心)이 바다를 건너가는 모습입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부터 중국, 고구려, 백제, 신라가 불교를 수용하여 일본에 전래하는 과정이
소상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백제의 대표적인 유물이 전돌과 기와를 제작하는 과정이 축소모형으로 연출되어 있고
백제의 금동불 제작과정이 각 단계별로 재현되어 있네요.
그리고 백제5층석탑의 축성과정도 재현되어 있구요.
임금이 현장시찰을 나온 모양이지요?
백제불교의 중심이었던 정림사(定林寺)를 1/12로 축소하여 복원시켜 놓았습니다.
정림사지를 발굴하는 사진들도 겻들여저 있구요.
박물관에 연해서 '정림사지(定林寺址)'가 있습니다.
아니죠. '정림사지' 옆에다가 박물관을 건축한 것이지요.
'정림사지'는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직후에 세운 절터입니다.
백제때도 이 절 이름이 정림사였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1028년에 만들어진 기와에 '定林寺'라는 명문이 있어서
고려시대에 이 절 이름이 '정림사'였던 것으로 밝혀저 있는 것이지요.
남북직선 상에 중문, 탑, 금당, 강당을 배치하고 주위를 회랑으로 둘러친 형태였었답니다.
"538년 봄
사비도성의 중심에는
정림사지가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었던
그 곳
빈터에 석탑만 우뚝 솟은지 오래
이제
백제인의 꿈과 땀이 밴
그 역사적의 현장에서
백제 정림사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정림사지정비복원사업-
사업기간: 2007-2012
사업비: 35,000백만원
사업추진: 문화재청, 충청남도, 부여군 "
북한땅 금강산인가 어딘가에 우리 불교계가 6.25때 소실된 절을 복원해 주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북한땅에도 금방 절이 복원되는데 그 옛날 백제문화의 중심에 서있던 이 절, 정림사는
앞으로도 몇년이 더 걸려야 복원이 된다니...
정림사지 5층석탑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후 6세기말에 세워진 석탑입니다.
정림사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탑이지요.
국보 제9호, 국보 서열이 매우 높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시대 돌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석탑이라구요.
정돈된 형태와 세련된 아름다움이 신라와는 또 다른 백제인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1층 몸체돌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그 공적을 새겨 넣었다구요.
이 탑이 백제의 중심이었음을 말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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