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팔경(關東八景)가운데 하나인 삼척'죽서루(竹西樓)'는 '50천(五十川)' 푸른물을 감돌며
우뚝솟은 기암절벽위에 터를 잡고 세워저 있읍니다.
('50천' 건너편에서 죽서루쪽을 향해 보면 기암절벽이 보입니다. 지금의 접근로에서는
절벽 모습을 볼수가 없지요.)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지만, 고려 명종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가 쓴
죽서루詩가 남아있는 걸로 보아서 12세기후반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겠다는 현판안내글이
세워저 있읍니다.
1403년(태종3년) 당시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고쳐 지었다했구요.
절벽위 자연암반을 기초로해서 건축되어저 있읍니다.
누(樓)아래 13개 기둥중 9개는 자연암반을 기초로, 나머지 8개의 기둥은 돌로 만든 기초위에
세워저있읍니다.
그렇다보니, 13개의 기둥높이가 모두 다릅니다.
자연을 그대로 이용해 지은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진수로,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말이 허명이 아닌듯 싶습니다.
누각에는 참 많은 글씨들이 걸려 있읍니다.
제일계정(第一溪정)은 1662년(현종3년) 부사 허목(許穆)이,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1837년 헌종3년) 부사 이규헌(李奎憲)이, 관동제일루(관동제일루)는 1711년(숙종37년)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썼답니다.
그밖에도 숙종, 정조, 율곡 이이 등 많은 명사들의 시(詩)가 걸려 있읍니다.
누각에서 내다 본 풍경입니다. 50천 물줄기 너머리 멀리 동굴신비관도 보이고 아파트도 보이고
현대건축물들도 보입니다. 전경(前景)을 해칩니다. 관동제일루의 품격을 떨어트리는군요.
누각을 끼고 아래로 내려오면 '용문(龍門)바위'가 있읍니다.
신라제30대 문무왕(文武王)이 사후(死後) 호국용(護國龍)이 되어서 동해바다를 지키다가,어느날 ,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때, 죽서루옆 바우ㅟ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랍니다.
그후 이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長壽), 다복(多福)의 기도처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고 합니다.
또 죽서루 경내에는 '송강 정철(松江 鄭澈) 가사의 터'라는 기념표석이 서있읍니다.
문화부가 1991년2월을 우리날 가사문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송강 정철의 달'로 정하고
'관동별곡'에 나오는 이곳 죽서루에 기념포석을 세웠답니다.
당시 두곳에 표석을 세웠다는데, 또다른 한곳은 '성산별곡'에 나오는 전남 담양 식영정 부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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