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복령 白伏嶺) ( 이 사진은 LUMIX포럼의 찬우님 작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은 잘 알아도,
구룡령(九龍嶺), 백복령(白伏嶺)은 잘 모릅니다.
구룡령은 영동의 양양과 영서의 홍천쪽을 이어주는 백두대간의 고갯길이고
백복령은 영동의 동해,삼척, 강릉과 영서의 정선을 이어주는 백두대간의 고갯길입니다.
백복령은 지형상으로 동해시 신흥동과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와 경계를 이루고
정상에 오르면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와 닿습니다.
임계쪽에서 동해를 향해 정상을 지나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길로 들어 서면 강릉 옥계방향으로 내려가고
오른 쪽 길을 따라서 내려 가면 무릉계곡을 옆으로 끼고 동해를 거쳐 삼척에 이릅니다.
1937년 국도 42번이 개설되기 전까지는 이 길, 백복령 옛길은 ,
조상님네들이 힘겹게 넘나들던 험준한 산골 길이었습니다.
영(嶺)동쪽 사람들은 백복령 넘어 임계, 여랑장으로 소금과 생선을 지고 날랐고
영(嶺)서쪽 사람들은 삼배와 곡식들을 지고서 백복령 넘어 북평, 삼척, 옥계장을 다녀 갔습니다.
특히 영서분들은 두부를 만들기 위해 간수(바닷물)를 옹기(단지)에 담아 지게에 지고서
힘겹게 넘든 고갯길이기도 했습니다.
'정선엮음아리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찌거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아
헐깨눈에 노가지나무 뻐독지게 부끔덕
세쪼각을 세뿔에 바싹 매달고 엽전 석양
웃짐지고 강능 삼척으로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 잘 다녀 오세요."
험준한 백복령 넘어 강릉, 삼척으로 소금 사러 떠난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불렀다는 대목입니다.
옛 문헌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강릉에 48개, 삼척에 40개의 소금가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백복령은, 그 소금이 영서로 넘어가던 소중한 길이었음이 틀림 없습니다.
'백복령(白伏嶺)'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확실치 않습니다.
요즘에 들어서면서 '백복령(白伏嶺)'이라고 통일해서 쓰고 있다지만
옛 문헌 '택리지'에는 '백봉령(白鳳嶺)'이라 기록되어 있다하고
'증보문헌비고'에는 '백복령(百福嶺)'과 '백복령(百復嶺)'을 혼용하고 있다던데
어떻게 해서, 업드릴 복(伏)자 '백복령(白伏嶺)'으로 통일이 되었는지....
혹시 이것도 일제시대에 다른 지명들처럼 바뀌어서 정리된 것이나 아닌지...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백복령 구비구비 정상 부근에 오르면, 이 지방 토속음식점들이 지나는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어떤이들은 이 음식들을 먹으러 이곳까지 오르기도 합니다.
길 건너편에는' 백복령쉼터'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향토 음식점들이 있습니다.
두곳 모두 아랫마을 원주민 아주머니들이 올라와서 음식들을 만들기 때문에
오리지날 강원도 토속 음식 이고 그 맛입니다.
42번 국도 따라 달리다가 잠시 쉬면서 내려다 본 산밑 저수지를 낀 마을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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