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중턱 광장에 세워진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의 동상입니다.
김구선생은 우리나라 화폐 고액권에 새롭게 등재될만큼 유명한 분이시지요.
많은이들이 존경하는 인물 제1위로 손꼽는 분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김구선생을
임시정부 주석, 남한단독정부수립 반대 남북협상차 평양방문, 안두희에게 피격되어 서거하신
반외세 애국운동가 정도의 가까운 행적은 잘 기억하시는 듯 싶은데
그 이전 선생의 행적은 소상히 기억하고 계시지는 않는듯 싶습니다.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태어 나셨습니다.
18세가 되던 1894년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海州城)을 공략합니다.
그리고 20세가 되던 1896년 3월 일본군 중위를 살해하고 사형을 언도받습니다.
광무황제(光武皇帝)의 특명으로 목숨을 구하지요.
신민회(新民會)에 가입,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1919년 3.1 만세시위로 일경의 감시가 두터워지자 상해(上海)로 망명을 합니다.
임시정부를 수립하신후의 활동은 널리 알려진 그대로 이구요.
지금은 삼성 강북병원이 된 경교장(京橋莊)에서 김구선생, 안두희 중위에게 피격되시지요?
그 경교장의 역사 또한 김구선생의 생애만큼 기구합니다.
이승만 초대대통령 시절 국회의장을 지내던 이기붕선생 일가가 이곳에서 살았드랬지요.
이기붕선생은 3.15 부정선거로 부통령(이승만 대통령의 런닝메이트)에 당선됩니다..
그러나 4.19 혁명이 일어납니다.
이승만대통령은 하야(下野)후 하와이로 떠나고
경무대로 피신한 이기붕일가는 큰아들 이강석대위에 의해 집단 권총자살로 생(生)을 끝냅니다.
이기붕일가가 떠난 이 비운의 경교장은
후에 4.19혁명기념 도서관이 되었다가
지금의 삼성 강북병원(고려병원)으로 바뀜니다.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총격으로 서거하신 김구선생은
1949년 7월 16일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을 치룬뒤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되셨지요.
시간을 내서 효창운동장의 김구선생 묘소를 다시 찾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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