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전라남도 기념물 44호입니다.
규모와 격식을 갖춘 조선시대 대표적 민간정원 가운데 하나입니다.
계곡물을 끌어들여 네모난 연못이조성되어 있고 연못 가운데는 둥근 섬이 만들어저 있습니다.
그리고 수백년은 되었음직한 배롱나무들이 연못을 감싸고 있습니다.
소쉐원과는 또다른 운치가 엿보입니다.
찾아간 지금이 봄이어서 그렇지 배롱나무꽃이 만발한 8월께 방문했더라면
하늘나라에 온듯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선생의 유적비가 찿는이들을 반깁니다.
원래 이곳은 명곡 오희도(吳希道,1583-1623)이 집을 짓고 살던 곳이랍니다.
광해군 시절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 '망재(忘齋)'라는 작은 집을 짓고 글을 읽으며 살았는데
광해군을 폐위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동지를 규합하던 능양군(후일의 仁祖)이
유비가 제갈량을 세번 찾아갔듯 세번씩이나 찿아 왔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당시 인조대왕이 말을 매었다는 30m높이 천년수령의 은행나무도 있지요.
넷째 아들 이정(以井) 오명중(吳明中, 1619-1655)이 부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계곡에 정자를 짓고 연못을 조성하였답니다.
산기슭을 타고 내리는 계류를 이용해서 윗연못과 아래 연못을 파고 아래 연못을 내려다 볼수 있도록 북서향으로 앉은 정자를 지었답니다.
연못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옥(玉)이 부딪치는 소리와 같다해서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 지었다구요.
'명옥헌'이라는 현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씨랍니다.
명옥헌에 앉자서 방문을 열고 앞을 내어다 보면 선계(仙界)가 펼처집니다.
위 연못은 인공적인 석축을 쌓지않고 따을 파내기만 해소 그냥 우물같아 보입니다.
(방문했을때는 물이 말라 있더군요.)
아래 연못은 동서 20m, 남북 40m의 장방형입니다.
자연 암반의 경사지를 골라서 모서리만 돌을 쌓아 연못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최소의 인공을 가한 까닭이겠지요? 모양이나 분위기가 아주 자연 스럽습니다.
연못 가장자리를 돌면서 수백년은 족히 넘었을성싶은 배롱나무들이 심겨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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