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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소쇄원

by 鄭山 2009. 4. 10.

 

 '소쇄원(瀟灑園)'은 이 대나무 숲길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명승(명승) 제40호

'소쇄원(瀟灑園)'입니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중기 대표적인 민간정원이지요.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기품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명리(名利)를 버리고 낙향한 선비의 고고한 이상향입니다.

 

 

 

'소쇄원(溯灑園)'의 주인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라는 분입니다.

양산보는 15세때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산하에서 학문을 딲았고,

17세 되던해에 과거에 급제했으나 그해에 기묘사화가 일어남니다.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남곤 등 훈구파에 밀려 전라남도 화순 능주로 유배당해 죽게되자

세상에 대한 뜻을 버리고 낙향해서 정원을 조성하고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삼니다.

 

'소쇄원(瀟灑園)'이라 이름한 것은 양산보의 호(號)인 '소쇄옹(瀟灑翁)'에서 비롯되었고,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구요.

 

 

 

오곡문(五曲門)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폭포가 되어 연못에 떨어지고,

계곡 가까이는'제월당'(霽月堂;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과

'광풍각'(光風閣; 비온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이 들어서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린 선비정신의 산실이기도 했답니다.

 

'소쇄원'에는 영조 31년(1775) 당시 모습을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서

원형을 추정할수 있답니다.

지금의 '소쇄원'은 양산보의 5대손, 양택지씨에 의해 보수된 모습이랍니다.

 

 

 

 

 

 

 

'소쇄원'은 우리 한국인들의 정원관(廷園觀)이 잘 들어나 있는 대표적 정원이라고들 말합니다.

 

정원 담장밑 수구(水口), 오곡문(五曲門)으로 흘러 들러드는 계곡물은

정원이 조성되기 전부터 흐르던 물이고,

광풍각아래 바윗돌들을 굽이처 내리는 폭포수도 계곡의 나무와 대나무숲도

원래 모습 그대로 이랍니다.

물론 위쪽 너머로 멀리 보이는 무등산 영봉도 그자리 그대로 있던 봉우리이구요.

소쇄원의 주인은, 그러니까,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그곳에 담장을 치고

그 안쪽을 자신의 정원으로 삼은 것 뿐이라는 얘기가 되지요.

다만, 생할을 위해 자연과 어울리는 두채의 집(자신의 거처와 손님들의 사랑방)을 짓고

주변에 꽃을 심은 정도가 전부랍니다.

인공적인 조성을 최대한 자제하고 자연자체를 정원으로 수용하는 것이,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정원의 특징인 것이지요.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는 그런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한국정원의 높은 미의식(美意識)에

존경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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