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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樓軒백루헌閑談

능소화도 피었습니다.

by 鄭山 2012. 6. 22.

 

 

 

능소화가 또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양반꽃'이라고 해서 아무집에서나 키울수 없었다던 귀한 꽃나무였다지요?

꽃가루가 눈에 묻으면 봉사(장님)가 된다고 함부로 만지지도 못해게 했던 꽃이었답니다.

집사람 기억으로는, 어렸을때 시골집 뒷마당에 이 꽃이 유난히도 많이 피어 있었는데,

화장실 지붕을 온통 덥고 화사하게 꽃을 피워서 '화장실꽃'이라고 불렀다나요?

옛날 어려서의 기억때문인지  집사람이 유난히도 정성드려 키우는 꽃나무 입니다.

 

  

뒷마당으로 나가는 계단 옆에 심겨저 있어서 계단에 떨어진 꽃들을 치우느라 성가셨드랬지요.

않되겠다 싶어 지난 봄에  타고 오르는 벗나무와 함께 마당 한쪽켠으로 옮겨 심어 놓았는데....

싫다고 앙탈 부리지도 않고 착근도 잘해주더니 이제 때맞추어 꽃도 많이 피워줄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 녀석들 말고 또다른  능소화 줄기가 더 있습니다.

담쪽에 심겨진 벗나무를 타고 기어오르는 능소화 줄기가 또 있습니다.

이 녀석도 함께 많은 꽃들을 피워줄듯 싶구요.

 

 

'능소화(凌宵花, Chinese trumpet vine)'

중국원산의 갈입덩굴나무 입니다.

생명력이 강해서 전국 어디에서나 잘자라는 줄기식물이지요.

옛날에는 엄격하게 양반집 정원에만 심었다고 해서 '양반꽃'이락 부르기도 했고

장원급제한 사람의 화관에 꽂는다고 해서 '어사화',

슬픈전설과 함께 해서 '구중궁궐화'라 불리우기도 했었답니다.

이 꽃에 얽힌 전설을 알고나면 이꽃이 더욱 각별해 보이기도 하더군요.

 

 

-능소화의 전설-

 

옛날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빰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뿐 궁녀가 있었답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앉아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의 소화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 오지를 않았어요.

 

소화가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 들였건만
그녀는 아마 그렇지 못했나 봅니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였겠습니까?

그들의 시심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기거 하게된 소화는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임금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을 너머 너머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에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답니다.

어느 여름 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으로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였다면

초상도 거창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초상 조차도 치루어 지지 않고

'임금을 기다리겠노라'고

애닯픈 유언을 남긴채 그렇게 사라져 갔습니다.

이듬헤 여름...

'소화'가 살았던 처소의 담장을 덮으며

주홍빛 꽃이 넝쿨을 따라 주렁 주렁 피어났는데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 꽃이 능소화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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