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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낙성대

by 鄭山 2008. 4. 17.

2호선전철을 타고 그렇게도 많이 지나쳤습니다만

막상 내려서 �아가 보지는 않았던 곳이  낙성대(落星垈)였습니다.

서울에 살다보니 언젠가는 가볼수 있지않느냐는 생각에 차일피일 했었던 거지요.

오늘은 인근 식당에서 친구들과 점심약속이 있었는데

너무일찍 도착, 시간여유가 있어서 이곳을 �았읍니다.

강감찬(姜邯贊)장군의 영정앞에 머리 숙이고 너무 늦게 찾아 뵌것에 대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낙성대(落星垈),

'별이 떨어진 집터',

고려시대의 명장 인헌공(仁憲公) 강감찬(姜邯贊)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 祠堂)입니다.

장군이 태어날때 이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낙성대(落星垈)'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이고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내려서 걸어서 한 10분정도 걸리는것 같습니다.

 

 

장군의 사당, 안국사(安國祠)로 향하는 첫번째 문입니다.

안국문(安國門)입니다.

제수받은 호 '안국공신(安國公臣)'에서 빌려온 이름이겠지요.

 

 

 

 

안국문을 들어서면 중문(中門)이 보이고 잘 손질된 정원이 나옵니다.

중문을 �해서 우측에 '고려 강감찬장군 사적비'가 세워저 있고

오른편으로는 '3층석탑'이 나옵니다.

 

 

 

고려백성들이 거란대군을 물리쳐 나라와 백성들을 구해준 장군의 공적을 찬양해서

장군이 태어난 집터(봉천동218번지)에 세웠다는 석탑입니다.

석탑 첫층 탑신 앞면에는 "姜邯贊 落星垈"라는 명문이 해서체로 새겨저 있습니다.

방치되어 오다가 1964년에 보수하고 1972년 지방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고

1974년 유적지 조성과 더불어 이곳으로 이전 되었다는군요.

 

중문을 지나면 사당(祠堂) '안국사(安國祠)'입니다. 

향로에 향(香)이 타오르고 있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저 있습니다.

 

 

입구에 세워저 있던 안내석이었지요.

그 앞에 글씨가 새겨진 석판이 또 세워저 있습니다.

가까이 한번 보지요.

 

 

 

그러니까,  이곳도 박정희 전(前)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유적지(遺跡地)중 하나인 것입니다.

'이 나라 안보의 의표로 삼게 하고자'  장군의 출생지 이곳을 유적지로 조성했다고 했네요.

일부 식자(識者)들은 박정희 장군이 자신과 군부 정권의 당위성을 부각 시키고자

이곳 저곳에 유적지들을 조성했다고 말들하지만...

어찌되었던, 박정희 전(前)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유적지들 이곳저곳에

후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잘된 일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당앞은 '낙성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공원안에는 분수도 있고 장군의 기마동상도 세워저 있네요.

 

 

 

끝으로, 인헌공(仁憲公) 강감찬(姜邯贊)장군의 영정입니다.

(영정 하단의 흰부분은 태양광선이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와서 액자 유리면에 반사된 현상입니다.)

 

 

장군의 약사를 정리해 보지요.(관악구청 자료입니다.)

 

+ 948                금천(衿川, 현 관악구 봉천동)출생

+ 983 (36세)      갑과(甲科)의 第1로 급제(及第), 예부시랑(禮部侍郞)

+ 1010(63세)     거란 40만군 격퇴

+ 1011(64세)     중추사(中樞使)  이부상서(吏部尙書)

+ 1018(71세)     거란 10만군 격퇴

+ 1019(72세)     귀주대첩(龜州大捷),  '안국공신(安國公臣)' 호 제수

+ 1020 973세)    벼슬에서 물러남,   성남별장(城南別莊)에 한거(閑居),   저술에 전념

+ 1030(83세)     문하시중(門下侍中)

+1 031(84세)     별세(別世), ' 인헌(仁憲)'의 시호가 내려�으며 현종(顯宗)  묘정(廟庭)에 배향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