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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홍릉(洪陵)과 유릉(裕陵)

by 鄭山 2008. 7. 2.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두개의 능(陵)입니다.

전에는 '금곡'에 위치하고 있다 고 해서 '금곡능(金谷陵)'이라고들  불렀지요.

청량리에서 이곳 까지오는시외버스가 있어서 많은 이들이 소풍길 삼아 찾아오곤 하던 곳입니다.

언젠가 부터인지 '홍릉(洪陵)', '유릉(裕陵)'으로 제이름을 찾아 부르고 있습니다.

 

'홍릉(洪陵)'은 조선 제26대 고종황제(高宗皇帝)와 그의 비(妃) 명성황후(明成皇后) 민(閔)씨가

묻힌 곳입니다. TV연속사극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분들의 능(陵)이지요.

'유릉(裕陵)'은 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純宗皇帝)와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민(閔)씨 그리고 

계비(繼妃)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尹)씨가  함께 묻힌 곳입니다.

 

먼저 '홍릉'입니다.

 

 

 

 

고종황제, 비운의 왕이지요.

재위기간 동안 청.일.러의 각축속에서 일련의 개화정책을 펴먼서

자주국가의 면모를 세계에 알리고자 1897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하는등

근대 자주국가를 이루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그러나 우리가 역사에서 보듯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1907년,네델란드 헤이그에 을사조약(乙巳條約)의 무효를 알리는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대신들과 일제에의해 강제퇴위를 당합니다.

1919년 1월21일 덕수궁(德壽宮)에서 승하(昇遐)합니다.(3.1독립만세의 믿거름이 되지요.)

 

명성황후(明成皇后) 또한 역사의 인물이지요.

고종이 대원군의 섭정에서 벗어나  친정(親政)을 펼치게 되자 

정치적 실권을 장악합니다.

친일제의 간섭을 벗어나  친청(親淸), 친러시아 정책을 펴 나가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일본자객들의 습격을 받아 1895년 10월8일  경복궁(景福宮)에서 피살됩니다.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처음 안장되었던 청량리에서 이곳 홍릉으로 옮겨와 합장(合葬)됩니다.

 

신도비각(神道碑閣)입니다.

 

 

침전(寢殿)입니다.

고종황제의 신위(神位)를 모신 제전이지요.

중국을 섬기는 제휴국가의 예에 따라 만들어진 조선역대의  왕릉 건물과는 달리

일자형 건물로 지었고 중국황제의 능제를 따라 조성을 하였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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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유릉(裕陵)입니다.

 

 

 

조선왕조 마지막 왕, 순종황제(純宗皇帝)

고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후 연호를 '희(隆熙)'라 하고

기울어지는 국운을 바로잡으려고 하였으나

일제의 간섭과 탄압으로 뜻을 펴보지 못한 비운의 왕이지요.

재위 4년만인 1910년 8월29일 이완용, 송병준, 이용구 등 친일대신들과 일제의 강압으로

한일 합방조약이 체결되고 맙니다.

단지 이왕(李王)으로 호칭된채 1926년 창덕궁(昌德宮)에서 승하합니다.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을 기하여 6.10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었지요.

 

순명효황후는 순종황제가 즉위하기 전인 1904년 경운궁(慶運宮)에서 황태자비로 승하하였고

지금의 뚝섬인 양주 용마산(龍馬山)기슭에 모셔 �다가 순종황제 승하후 이곳으로 옮겨 합장되었답니다.

 

순정효황후는 1906년 황태자비로 책봉되었다가 순종이 즉위하면서 황후가 됩니다.

한일합방당시 옥새(玉璽)를 감추기까지 한 일화가 유명하지요.

나라를 잃은후 일제의 침탈과정을 경험하고 광복과 한국전쟁까지 겪였고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모든 슬픔을 달래다가

1966년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서 여생을 마칩니다.

 

이어서 순종황제의 신위(神位)를 모신 침전(寢殿)과 신도비각(神道碑閣)입니다.

 

 

 

 

그리고 순종황제의 침전(寢殿) 앞에 세워진 석물(石物)들을 봅니다.

홍살문까지 양쪽에 늘어선 석물들입니다.

문무석(文武石)에 이어서 기린,코끼리, 사자, 해태,낙타, 말(馬) 순서로 세워진 수형석(獸形石)들 입니다.

 

 

고종황제의 침전앞에도 똑같은 석물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데

설명문에 따르면 순종황제 침전쪽 석물들이 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또 설명문에 따르면,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한뒤 황제로 칭함에 따라서

침전(寢殿)의 규모와 형태는 물론

능(陵) 또한 중국 황제들의 능(陵)에 준하는 석물들을  도열시켰다고 했는데....

사실 그동안 역대 왕들의 능(陵)을 오가면서도 자세히 관찰을 하지 않아서인지

다른 능들의 석물들과 비교가 않되는 군요.

가까운 장래에 다른 능(陵)을 참관해야 되겠고

그때 자세하게 비교관찰을 해보아야 겠습니다.

<문관석인 文官石人>과 <무관석인武官石人>

 

 <석기린石麒麟>

 

<석상石象>

 

<석사자石獅子>.

 

<석해태石해태>

 

<석낙타石駱駝>

 <석마石馬>

 

그리고 홍릉과 유릉 사이에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관리사무소가 있는 옛건물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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