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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제주 대정성지

by 鄭山 2009. 9. 20.

 

 

 

제주도 대정에 위치한 '정난주 마리아의 묘'입니다.

찾는 길을 몰라 지나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정난주는 모르겠고  마리아라는 분의 묘는 저쪽'이라고 가르켜 줍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할머니는 이름은 기억 못해도 마리아라는 분의 묘소는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신앙의 불모지였던 이땅 제주에서 정난주 마리아는

수난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거자로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분으로 존경을 받습니다.

 

그녀는 나주 본관 정약현(丁若鉉)과 경주 이씨(李氏)사이에서 태어나 '명운(命運)'이라는 아명을 받습니다.

일찍부터 천주교에 입교하여 전교에 힘썻던 당대 최고의 실력자 정약전(丁若銓), 정약종(丁若鐘),

정약용(丁若鏞) 형제가 그 녀의 숙부들이며 이 나라 신앙의 성조인 이벽(李壁)의 누이였습니다.

황사영(黃邪永)과 결혼한 그 녀는 1800년 아들 경한(景漢)을 낳습니다.

남편 황사영은 약관 16세에 초시, 17세에 복시에 장원급제하여 정조대왕으로 부터 칭찬과 학비를 받은

영특한 인재였읍니다만 천주교를 신앙함으로서 현세에 등을 돌립니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에게서 세례를 받고 전교에 진력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때 충북 제천의 베론으로 피신하여 이른바 황서영 백서(黃嗣永 白書)를 쓰지요.

박해의 실상응 기술한 이 백서는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발송되기 직전 발간되고

항사영은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를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이 윤혜는 거제도에, 처인 정마리아는 제주도에, 아들 경한은 추자도에 각각 유배됩니다.

정마리아는 두살난 아들을 품에 안고 귀양길에 올랐고

추자도에 이르러서 어린 아들과 생이별을 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추자도에 격리된 아들은 어부 오(吳)씨에 의해  키워젔고 그 후손이 현재 추자도에서 살고 있다는 군요.

제주목 관노로 배정된 그 녀는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주민들을 교화시켜

노비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할머니'라 불리우며 이웃들의 존경속에 사셨답니다.

주변의 묵인속에 신앙을 지키며 사시다가  병환으로 숨을 거두었고

그 녀를 흠모하던 이웃들에 의해 이곳에 안장이 되었답니다.

 

제주교구는 선교100주년 사업으로 이 묘역을 성역화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