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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일본의 옛수도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

by 鄭山 2007. 6. 28.

일본의 또다른 고도(古都) 나라(奈良)에 있는 일본 불교 화엄종(華嚴宗)의 대본산입니다.

수많은 일본의 국보와 중요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 대 가람입니다.

745년 나라(奈良)시대 쇼무(聖武)천황의 부탁으로 교키(行基)스님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서기 737년, 일본 전역에 천연두가 무섭게 번졌습니다.

민심은 흉흉해 지고 규수지역에서는 반란까지 일어 났습니다.

천황은 민중의 신망이 높은 교키(行基)스님에게 큰 사찰을 지어서

불심으로 국가를 안정시켜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당시 70이 넘은 노승은 전국을 돌며 보시를 받아 절을 세웁니다.

세계 최대의 법당과 불상을 조성합니다.

700여 신을 모시던 일본사람들에게 부처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 인지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천황의 권위도 세워 주었구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로 알려진 대불전과 앉은 키가 16m나 되는 대불상이 모셔저 있습니다.

 

동대사로 향하는 길입니다.

관광객들이 길을 꽉 메우고 있읍니다.

 

 

 

 

동대사의 중심인 금당(金堂) 즉 대불전입니다.

전면 57m, 깊이 50m, 높이 48m나 되는 셰게 최대의 목조건물로 알려저 있읍니다.

 

 

 

 

 

지금의 대불전은 창건 당시의 그 대불전은 물론 아닙니다.

여러 차례의 내전과 지진으로 소실되고, 에도시대인 1709년에 다시 복원 되었다가, 1980년 대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읍니다.

 

대불전에 모셔저 있는 본존불, 비로차나불(毘蘆遮那佛)입니다.

앉은 키 16m, 얼굴길이 만도 5m나 되는 엄청나게 큰 불상이어서 나라대불(奈良大佛)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중국의 운강석굴(雲岡石窟, 14-16m), 용문석굴(龍門石窟, 17m)에 버금가는 대불(大佛)입니다.

조불사는 구니나카노키미마로(國中公麻呂)라는 사람이었다구요.

구리 74만근이 들어 갔다고 합니다.

 

지금의 나라대불도 역시 창건 당시의 그 대불이 아닙니다.

불상이 만들어 진지 백년이 지난 855년2월, 지진과 화재로 파괴됩니다.

불체(佛體)와 대좌(臺座)만 창건 당시의 것이고, 양손과 머리 부부문은 후세에 계속 보수된 것이랍니다.

 

동대사 입구의 버스정류장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대사를 찾는지 말해줍니다.

 

동대사 입구에 세워진 석조물입니다.

유네스코에 세게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지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자기들의 문화유산임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세계유산, 고도 나라의 문화재, 동대사"라고 쓰여저 있읍니다.

일본의 문화유산이면서 세계의 문화유산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설적으로, 우리의 문화재일수도 있다는 얘기로 해석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동대사를 창건한 사람들은 옛 우리의 선조들입니다.

앞서 동대사를 교키(行基)스님이 창건 했다고 했읍니다.

백제계 스님입니다.

일본 최고의 승직인 대승정(大僧正)에 오릅니다.

천황도 스스로 스님의 제자로 출가를 했다구요.

그리고 앞서, 나라대불(大佛) 의 조불사가 '구니나카노키미마루(國中公麻呂)'라고 했읍니다. 백제계입니다.

그리고 또, 대불전이랑 주요 건축물들을 지은 대목이 '이나베노모모요(猪名部百世)'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신라계입니다.

또 대불에 입힌 황금을 모은 이도 백제왕 경복(敬福)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부호와 권력자 가운데 많은 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또, 이 동대사 대불전이 완공되던 751년, 같은 해에 신라에서는 경주의 불국사가 준공이 됩니다.

두 사찰의 나이가 같은 것이죠.  두 사찰간의 교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일본이 자랑하는 동대사는, 백제계의 스님 주도로  백제와 신라계 기술자들이 함께 만들어 놓은

백제계(百濟계) 사찰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동대사(東大寺), 세계의 문화유산입니다.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