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카메라 시장의 최고의 강자로 군림하는건 일본 메이커인 캐논과 니콘이라고 하는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 35mm 포맷의 필름 카메라를 생산하는 회사는 독일의 라이카가 유일하고, 모든 메이커는 디지털 카메라 생산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선두주자는 캐논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모든면에서 캐논이 앞서고 니콘이 뒤쫒는 형국인데,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니콘의 입장에선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니콘은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절대 강자였고 캐논이 넘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니콘의 프로페셔널 기종인 F3는 당대 최고의 카메라로 군림하였는데 전세계 절대다수의 프로 사진가들과 하이 아마추어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는 입장이었고, 이에 캐논의 대항마는 New F1이었지만 니콘의 아성을 허물기엔 모든면에서 역부족이었다. 니콘의 입장에선 F, F2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모두 쏟아부은 F3는 35mm 포맷의 어떤 바디도 흉내내기 어려운 존재였는데 세계 최고의 기술력이라는 라이카도 SLR 바디만은 니콘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태였다. 당시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의 중계를 보노라면 사진기자들의 열띤 취재경쟁의 장면들이 TV화면에 더러 잡히곤 하였는데 모두 니콘일색이었다. 지금은 온통 캐논의 소위 백통렌즈가 절대적이지만 그 당시엔 완전히 반대였다. 이런 장면들은 일반 아마추어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마케팅 방법이 되었던 것 같다. 70년대에서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아마추어 사진인들에게도 니콘은 절대적이었다. 니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니콘 사용자가 많은 상황이었다.
전세계 카메라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니콘이 왜 지금은 만년2위였던 캐논의 뒤를 쫒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일까?
먼저 두회사의 발달 과정부터 알아보면 그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카메라 회사들은 독일제 카메라의 모방을 시작으로 발전하여 왔는데, 니콘과 캐논도 마찬가지였고 니콘은 칼자이스 렌즈로 유명한 자이스이콘의 콘탁스모델을 캐논은 라이카의 바르낙타입을 모방하여 만들기 시작한게 일본 카메라의 시발점이었다.
니콘은 1917년에 설립한 "일본광학공업주식회사"로 시작하였고 일본의 광학군수물자를 공급하는 국책회사였다. 1,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의 광학기기를 생산하였으나 종전후 민수회사로 전환되면서 카메라를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콘탁스의 레인지파인더 모델을 모방하였는데 1948년 "Nikon I"을 시작으로 1951년 "Nikon S", 1954년 "Nikon S2", 1957년 "Nikon SP", 1958년 "Nikon S3", 1959년 "Nikon S4"까지 출시하였다. 당시 자이스이콘의 콘탁스를 모방하여 만들기 시작하였지만 나중 그 품질력은 오히려 자이스이콘의 콘탁스 보다 우수한 내구성의 바디를 만들게 되었다. 자이스이콘을 모방하였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렌즈의 거리계링이 도는 방향이 다른 카메라와는 반대방향이다. 이방향으로 도는건 니콘을 따라간 펜탁스와 둘뿐이다. 다른 메이커는 모두 라이카의 방향으로 돈다. 니콘렌즈의 강한 콘트라스트와 짙은 색감 또한 칼자이스의 설계를 모방한 흔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Nikon이란 브랜드명은 그들이 모방하였던 독일 Zeis Ikon의 ikon 과 Nippon의 첫글자를 합성하여 만들어진 것 같다. 1988년 회사명도 브랜드명인 니콘과 통합하여 "주식회사 니콘"으로 바꾸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특파원으로 나온 라이프지의 기자 몇명이 니콘을 사용하여 프로들에게 인정 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기자들은 라이카를 사용하였으나 값싸고 튼튼하여 고장없는 니콘은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는데 1957년 라이카의 역작 M3가 출시되자 니콘은 큰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 더이상 레인지파인더식으로는 절대 라이카를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절치부심하여 출시한게 니콘 최초의 회심의 역작 "Nikon F"이다. Nikon F는 카메라 역사상 제대로 만든 최초의 SLR카메라로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1949년 펜타프리즘을 최초로 사용한 자이스이콘의 Contax S, 1952년 Asahiflex I, 1958년 Topcon R, 1958년 Miranda SR2 등의 SLR카메라가 이미 출시되었으나 제대로된 프로페셔널 스펙의 최초의 카메라라고 보아야 한다. 당시의 다른 SLR과는 확연히 그격이 달랐다. 파인더 분리형의 튼튼한 내구성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카메라가 되었다. 이후 다양한 파인더와 악세사리가 개발되었고 명실상부한 니콘 SLR카메라의 근간이 된다. Nikon F는 월남전 당시에 종군기자들에게 사용되어 큰 인기를 모은 기종이다. 니콘은 여세를 몰아서 1965년 브래드를 이원화하는데 "Nikon"은 프로페셔널 브랜드로 이어가고 보급형으로는 "Nikomat"시리즈로 양분하는데, 보급형 최초기종인 "Nikomat FT"를 출시하여 니콘의 시장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니콘F를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에무씨(MC) 같다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당시 미제 GM의 군용트럭들이 워낙이 튼튼하데 비유한 말이다.
1971년 가을 니콘은 역사적인 명기라는 "Nikon F2"를 출시하는데 이는 현재까지 생산된 모든 SLR바디를 통틀어 기계식 SLR바디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바디로 평가되고 있다. 레인지파인더의 최고봉이 라이카 M3라면 기계식 SLR 최고의 바디는 니콘 F2인 것이다. 전기의 니콘F를 보완하여 셔터스피드는 1/2000로 높였는데 당시의 기술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금속막셔터를 사용하였지만 과거 자이스이콘의 콘탁스처럼 서로 엉키는 등의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고 그 내구성은 현재까지도 인정 받을만한 최고 수준이었으며 오늘날 금속포컬플레인셔터의 원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세상에 나온 모든 SLR바디중 가장 튼튼한 바디라고 말할 수 있는데, 레인지파인더식의 최고봉이 라이카 M3라면 SLR식의 최고봉은 니콘F2라고 말하는게 맞을 것 같다.
1977년 니콘은 니코마트와 이원화하였던 브랜드명을 다시 니콘으로 통합하고 첫 니콘 보급형 모델인 "Nikon FM"을 출시하는데 이는 보급형 기종에 고급화를 가져온 대단한 일이었고, 다시 한번 니콘의 실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조리게우선 셔터자동의 FE가 다음해에 나왔으며, 이모델은 최고 셔터속도가 1/1000초였으나 나중 1/4000까지 올린 FM2를 비롯하여 셔터자동인 FE2, 양우선식인 FA에 이른다. 당시 니콘이 생산한 모든 모델은 대히트를 쳤고 니콘의 기술력은 당시로선 대단한 것이었다.
1980년 니콘은 프로페셔널 기종의 3세대 "Nikon F3"를 출시하여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F3가 출시된 처음엔 니콘 사용자들이 자동노출이 가능한 프로용 장비인 F3를 거부하는듯한 현상이 초기에 약간 보이는 듯 하다가 몇년지나지 않아서 전세계 보도사진가들이 대부분 니콘을 사용하게 만든 모델이 바로 F3인데 아마추어 시장에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쳤다. 80년대 우리나라 신문사의 사진기자의 표준장비는 니콘F3바디 두대에 두개의 렌즈 즉, 35-70 또는 24-50과 80-200 렌즈였다. 그만큼 F3는 잘 만들어진 바디인데 그동안 캐논을 포함한 다른 메이커가 만든 자동노출이 가능한 바디가 고장이 잦아서 프로가 사용하기엔 별로라는 인식이 있어서 니콘이 만든 F3도 불신하였지만, 얼마안가서 그동안의 다른 브랜드의 자동노출 카메라와는 그 품격이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그런데 니콘의 영광은 딱 여기까지였다. 서울 올림픽이 있던 1988년 니콘은 최초의 오토포커스 기능을 갖춘 "Nikon F4"를 출시하였는데, 그 디자인은 F3를 디자인한 이태리의 유명한 디자이너인 주지아로에게 의뢰하였는데, 이때부터 니콘은 캐논에게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게 된다.
니콘 F4와 같은 시기에 출시된 캐논 EOS1은 개발 컨셉이 전혀 다른 기종이다. 니콘은 F의 성공에 힘입어 F2, F3를 출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기에 특별한 변화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니콘 F4의 개발 컨셉은 그동안의 니콘F시리즈 사용자가 아무런 불편없이 사용하게 한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당연히 1959년부터 판매된 수많은 렌즈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새로운 오토포커스 렌즈를 사용하는건 부수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숙달된 프로 사용자가 굳이 오토포커스 기능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을거로 보았는데 차라리 그동안 사용하던 렌즈를 그대로 사용이 가능하게 하고 별도 외장이었던 모터드라이브를 내장시키며 각족 조작부도 F3와 별차이가 없이 그동안 숙달된 방식으로 이질감 없이 사용이 가능하게 하면서 좀더 기능을 발전 시키는 방향으로 컨셉을 잡은 것이다. 이게 오늘날 캐논에게 밀려버린 원인이 될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럼, 캐논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도록 하자.
1936년 "정밀광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는데, 창업주의 한사람인 요시다고로는 독실한 불교신자였고 불교의 관음(천수관음)이란 단어를 영문자로 표기한 "Kwanon"을 브랜드로 사용하려고 하였는데 이것이 나중 Canon으로 바뀐다.
캐논은 처음에 라이카의 바르낙 타입의 모델을 복제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1936년 회사명을 "일본정밀광학연구소"로 개명하고 첫 모델인 "Hansa Canon"을 출시하였다. 렌즈는 당시 최고의 일본 광학메이커였던 니콘에 의뢰하여 생산한 Nikkor 50mm F3.5를 달았다. 요즘도 간혹 보이는 니콘의 라이카 스크루마운트 렌즈는 캐논의 요청에 의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캐논은 처음부터 광학기술이나 규모면에서 니콘의 경쟁자가 되기 힘든 상황이었고, 니콘은 군수물자 생산에서 민수회사로 전환을 꿈구던 서로간의 이해가 맞아 이루어진 일이다. 이차대전이 끝난 후 1949년, 캐논은 회사명을 일본정밀광학연구소에서 주식회사 캐논으로 바꾸고 독자적인 렌즈개발에도 성공하게 되지만 여전히 바디는 라이카 모델을 카피하고 있었다.
니콘이 "Nikon F"를 출시하기 한달 먼저 "Canoflex"라는 SLR타입을 출시하였지만 니콘F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고, 그만듬새도 니콘과는 수준차이가 상당히 있었다. 캐논의 라이카 스크루 마운트의 바디 즉, 레인지파인더식의 생산은 1968년 당시 유명했던 "7S"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고, 1964년경부터 니콘F를 상대할만한 프로용 카메라 생산에 돌입하여 1971년 니콘이 "Nikon F2를 출시하던 해에 제대로된 프로페셔널 기종인 "Canon F1"을 출시하였지만 이미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니콘을 따라잡기에 힘든 경쟁이 되었는데, 당시 니콘의 F2는 절대적인 입지에 있었기에 당시로서는 타메이커에 비해서는 우수한 카메라를 만들었지만 이때부터 캐논은 2인자의 자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품질면으로도 당시 캐논의 바디는 니콘에 비해 내구력에서 경쟁이 되지는 못했고, 이후 니콘의 초히트작 "Nikon F3"에 대항마로 "Canon New F1"으로 맞서 보지만 절대 역부족이었다. 전세계 모든 신문사 등의 보도사진분야에서는 모두 니콘F3를 사용하였고, 당시 니콘의 SLR카메라 기술력은 세계최고였는데, 특히 SLR바디에 대한 기술력은 이미 독일의 라이카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에 캐논이 니콘을 이긴다는건 어불성설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니콘의 전성기라고 보아야 한다. 감히 니콘을 능가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다른 메이커들은 니콘과 맞서는 방법이 아닌 다른 특화된 시장을 찾기 위해 노력하엿다. 세계최고라는 독일 라이카도 니콘이 SLR카메라인 "Nikon F"로 보도사진용 시장을 공략하자 뒤늦게 1965년 라이카 최초의 "Leicaflex"를 출시하였지만 렌즈의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과 고장없는 튼튼함으로 무장한 니콘에게 그들의 시장을 대부분 내주게 되었는데, 1970년대 중반 니콘F2가 대성공을 거두자 위기의식을 느낀 라이카는 일본 미놀타와 기술제휴로 그들의 투박하기만 한 라이카플렉스 SL2를 버리고 미놀타의 SLR바디 제조기술을 전수받고 그들의 장기인 렌즈기술을 미놀타에 전수하였는데 이때부터 미놀타의 렌즈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당시 일본의 다른 메이커들인 펜탁스, 올림푸스도 니콘이나 캐논과 정면승부하기보단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결과 펜탁스는 천체사진쪽에 풍부한 악세사리를 갖추게 되었고 올림푸스 또한 마이크로 촬영장비에 공을 들였기에 오늘날 의료용 사진분야에 최고의 회사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이런 니콘의 성과는 다른 일본회사들을 자극하게 되어 일본제 카메라의 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하게된 계기가 되었고, 세계 최고라는 독일제에 카메라 회사들을 존폐의 위기에 까지 몰고 갔다.
그렇게 절대우위에 있던 니콘이 만년2위의 캐논에게 1등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는건 캐논 "EOS1"이 출시되고 부터이다.
대개 카메라회사는 프로페셔널 모델의 변경을 하기전 테스트로 보급형에서 새로운 방식을 테스트해본뒤 그 반응을 보고 보완수정하여 그들의 플래그쉽 바디인 프로페셔널기종에 그 기술을 투입하게 된다.
캐논도 그들의 신무기인 EOS마운트를 "EOS1"이 출시되기전 1987년3월에 "EOS650", 그해5월에"EOS620"으로 연달아 투입하여 시장의 반응과 테승트 보완을 거쳐 니콘이 1988년12월에 "Nikon F4"를 출시하자 바로 1989년에 SLR카메라에 일대변혁을 일으킨, 그야말로 당시로선 아주 혁신적인 카메라 "Canon EOS1"을 출시하였다.
캐논은 그동안 니콘과의 경쟁에서 항상 뒤지는 입자에 있었기에 기존의 방법으론 도저히 니콘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전혀 새로운 방식, 기존의 카메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결정하고 모든걸 새롭게 개발하였다.
니콘이 F4를 출시하면서 기존의 F부터 F4까지의 사용자가 전혀 위화감 없이 그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조작하고, 기존 렌즈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하여 불편이 전혀없게 하면서 기능을 보완하는 방법을 선택하였지만 캐논은 기존의 모든 방식을 버렸다.
나는 니콘을 좋아하여 니콘F부터 F4까지의 프로기종과 니코마트 시리즈를 포함한 대부분(아마 하나도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의 보급형 바디까지 사용해본 그야말로 니콘 매니아였다. F4가 출시되자 바로 구입하여 사용해보고 실망하였는데, 원래 전자식 카메라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전자식이라면 편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F3와는 달랐다. AE rock, AF rock 버튼들의 거리가 멀어 누르기에 불편하고 무거웠고, 출시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AF렌즈를 구할 수 없어 일본출장 가는 형에게 부탁하여 AF35-70 AF2.8 렌즈를 붙여서 사용해보았더니 무슨 오토포커스가 이런 속도로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정도라서 차라리 그냥 숙달된 메뉴얼포커스 훨씬 편하고 빨랐다. 또한 렌즈의 외경도 고급스럽지 않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는데 포커스를 메뉴얼로 풀어서 돌려보면 이건 마치 그냥 서걱거리는게 아주 싸구려티가 났고, 직진식 줌은 얼마안가서 흘러내리기 일쑤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메뉴얼 35-70 F3.5가 훨씬 신뢰가 가서 렌즈부터 처분하고 메뉴얼렌즈들을 F4바디에 사용해보니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기존 F3를 사용하는게 차라리 편하였다. 얼마뒤에 잘아는 카메라 수리실에 들렀더니 수리들어온 F4를 완전 분해해 놓은걸 보았더니 또한번 실망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니콘은 튼튼함의 대명사였건만 F4는 F3와는 다르게 황동이 아닌 흰색의 플라스틱 부품으로 가득차 있었기에 가뜩이나 별로 마음에 안들었는데 바로 처분해버렸다. 시대가 바뀌었고 전자기술이 카메라에 대폭적용되었다면 기존보다 훨씬 편리한 무엇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큰 실망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아마 1991년초로 기억하는데 회사에 출근하여 있는데, 누군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였고 나에게 내민 카메라는 캐논 EOS1이었다. 처음 본 EOS-1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전원이 끄진 카메라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셔터스피드 다이얼, 렌즈에는 조리게도 없는 아무런 조작부가 보이지 않는 이상한 물건이었는데, 사무실에서 두어시간 만져보고는 탄복하게 되었다. 기존의 모든 35mm 포맷 카메라는 펜타프리즘 우측이나 좌측의 카메라 상부에 셔터스피드 다이얼이 있고, 렌즈의 외경에 조리게 조정다이얼이 있는게 상식이었으나 캐논 EOS1은 전혀 달랐다. 전원을 켜니 상부의 액정에 조리게 치와 셔터스피드, 측광모드 등의 카메라의 모든 상황이 표시되었다. 셔터스피드, 조리게, 노출측정모드, AE rock, AF rock 등의 모든 조작 다이얼은 모두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조작이 아주 쉽게 되어 있었는데, 그래 이게 바로 인체공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AF속도도 니콘과는 다르게 아주 빨랐다. 니콘은 AF는 셔터릴리즈버튼을 눌렀다 떼는 순간 무한대로 갔다가 다시 측거하는 방법이어서 있으나마나한 수준의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느린 것이었지만 캐논은 니콘에 비해선 꽤 쓸만한 수준이었다.
캐논은 EOS1을 개발하면서 기존의 모든 걸 버렸다. 기존 렌즈는 모두 새로운 바디에는 사용할 수가 없기에 새로운 렌즈를 만들었는데 AF를 구동하는 새로운 모터인 USM을 렌즈에 탑재하여 바디와 렌즈의 두군데서 측거를 위한 장치를 개발한 것이 상당한 효과를 본 것이다. 이것은 상당한 모험이었을 것인데, 캐논은 과감하게 시행한 것이다. 그들의 유명한 L렌즈 역시 새로운 EF마운트에 USM을 탑재하여 새롭게 태어났는데 캐논의 L렌즈가 제대로 대접받기에 이른건 EOS(Electro Optical System)바디에 탑재되면서 부터이다.
당시 EOS1을 만져본 나는 "아! 이런게 인체공학적이라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였고, 이젠 니콘이 시대는 끝났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몇 년 뒤부터 정말 그렇게 되고 말았다. 모든 카메라 회사들이 캐논의 EOS의 디자인과 기능을 모방하여 만들기 시작하였고 명실상부하게 캐논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렇게 바뀌버린 순위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아 왔다. 니콘 F4다음 모델인 "Nikon F5"부터 니콘도 자존심을 버리고 캐논과 동일한 방법으로 디자인을 바꾸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지고 난 뒤였다.
EOS1을 출시하고 자신감이 붙은 캐논은 마케팅도 아주 공격적으로 하였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캐논에서 우리나라 최대의 신문사 사진부가 보유한 모든 니콘의 바디와 렌즈를 캐논의 새로운 EOS1과 동급이 캐논렌즈로 교환해주겠다고 제안하였는데 신문사로부터 거절당했다. 이유는 기자들이 캐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년지나지 않아 그 신문사는 자비로 기존의 니콘 장비들을 버리고 캐논으로 전부 교체하였다. 이건 그신문사만이 아닌 전세계 모든 보도사진 분야가 그렇게 바뀌어 버렸는데, 스포츠 경기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장비들도 니콘을 찾아보기 힘들고 온통 캐논으로 바뀐건 물론이다.
니콘은 모든 메이커가 필름카메라 생산을 포기하고 디지탈로 돌아선뒤에 자신들의 마지막 필름바디이며, 니콘이 그렇게 자신하던 마지막 프로페셔널 F시리즈인 "Nikon F6"를 출시하였는데 니콘의 명성을 다시 찾기엔 세상이 이미 디지탈 세상이 되어 버린뒤였다. 니콘이 그걸 모르고 출시하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그걸 보고 참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콘F6는 정말 잘 만든 바디인데, F4부터 이렇게 만들었다면 과연 캐논의 오늘날 같은 영광이 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모든 35mm 포맷의 카메라 디자인은 캐논의 EOS시리즈와 거의 같다. 캐논은 현재 카메라 디자인의 명실상부한 원조가 되버린 것이다.
과거 니콘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캐논보다 회사의 규모면이나 자금력면에서도 확실한 우위에 있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캐논은 이제 광학관련의 여러분야에 뛰어들어 있는 막강한 자본력의 대기업이 되었고, 디지탈 시대에서도 그동안 관련사업에서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과거 필름에 해당하는 CMOS까지 자체 생산하고 있는데 반해 니콘은 소니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이다. 규모의 경제면에서도 상당히 뒤진게 사실이고 이걸 만회하려면 이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나 현재 니콘의 입장에선 역부족이다. 지금의 카메라는 과거와 달리 광학과 메카트로닉스만 가지고는 안되는 광학은 물론이고 소재, 기계, 전자 특히 디지털 관련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과거처럼 렌즈잘만들고 바디 튼튼하게 만들면 되던 시절과는 그양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니콘이 캐논과의 경쟁에서 살아나려면 그들의 장기인 튼튼한 바디, 오랜 렌즈가공기술에 더하여 첨단 디지털 기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뭏든 니콘과 캐논 모두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수준의 카메라 회사임엔 틀림없다.
모셔온곳: 안태석의 사진과 카메라 이야기 http://blog.daum.net/ats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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