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성당이라고 해서 찾았습니다.
경기도 기념물 제82호 랍니다.
오랜 역사도 역사지만 역사만큼이나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초대 신부로 부임해 오신 안토니오 공베르(孔安國,1875-1950)신부에 의해 1921년에 세워젔다는군요.
성당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전통 서양 교회건축을 그대로 따랐구나 생각을 했는데
옆으로 돌아 서면서 깜작 놀랐습니다.
한옥(韓屋)입니다.
서양 카톨릭교회 건축양식과 한국전통 건축양식의 절묘한 조화 입니다.
조경수로 소나무들이 많이 심겨저 있어 고풍스럽습니다.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입니다.
구포동성당 100년기념성전입니다.
주일미사등은 이곳에서 봉헌되고 있었습니다.
'100주년 기념관'이자 유물전시관 입니다.
들려보지 않았습니다.
다음번 찾아왔을때 들려보려고 남겨 놓았습니다.
'100주년 로고스탑(塔)'이랍니다.
안성지역에 하느님의 말씀이 뿌려진 100년을 기념해서 '로고스'라고 명명을 했답니다.
탑 아래칸에는 2100년 성당설립 200주년에 개봉하도록 명시된 타임캡슐이 안치되어 있답니다.
2000년10월3일 기념식 당시 봉안을 하였답니다.
신구약성서, 성당100년사 등이 묻혀 있다구요.
'안토니오 공베르' 신부의 흉상입니다.
동생 '줄리앙 공베르' 신부와 함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사제서품을 받은뒤
한국땅 안성에 부임해 오셨다구요.
안성에서 32년 동안 신자들을 돌보며 포도재배를 시작해 농촌생활의 안정을 꾀하셨고
일제하의 국권회복은 2세교육에 있다시며 안법학교(현 안법고등학교)를 설립하셨고
3.1운동때는 지역내 만세운동을 주도하셨다는군요.
일본경찰에 쫒기는 사람들을 성당구내에 숨기고 프랑스국기를 내걸고 치외법권을 주장하며 목숨들을 구해준 유명한 일화를 남기셨네요.
6.25당시 북한군에 납치되어 죽음의 행진을 계속하다가 동사를 하셨다는군요.
동생 줄리앙 신부도 형을 따르다가 공베르신부가 임종한 다음 날 하늘나라로 가셨답니다.
마음이 무겁네요.
성당구내에 포도덕대가 있습니다.
지금은 이른봄철이라 가지들만 엉성하지만 때가 되면 포도나무가 넝쿨을 이루고 알알히 포도송이가 매달린답니다.
이제는 안성의 대명사가 된'안성포도'의 시작이 바로 이 구포동 성당이랍니다.
공베르 신부가 성당마당에 우연히 심은 독일산 포도나무가 탐스러운 과실를 맺는 것을 보고
안성의 토질이 포도나무에 적합하다고 판단,
프랑스 포도나무 32종을 들여다 성당 앞뜰에 포도밭을 조성했던 것이
오늘날 '안성포도'를 만들어낸 효시였다는군요.
'십자가의 길'이 예술(藝術)입니다.
한옥(韓屋)성당 뒷편에 조성된 소나무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길을 따라 돕니다.
석축(石築)바위틈새에 이른봄 따라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