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찬미

승리의 성모

by 鄭山 2012. 4. 18.

 

 

 

'승리의 성모상' 입니다.

'신리성지'에서 어렵게 모셔 왔습니다.

지난 주말로 마지막 재고 성모상을 모두 반출했고 이제는 더 이상 제작하지 않는다는 수녀님의 말씀입니다.

이번 '신리성지' 방문 여행길은 이 성모상을 모시고자 떠났던 길인데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않되지요.

 

신리성지를 처음 순례했던 날은 2년전 6월 하순, 그러니까 1년 10개월 전 이었습니다.

그때 이 성모상을 처음 만나 뵈었지요.

집사람이 꼭 모시고 싶어 했는데... 집안에 모실 장소가 적당치 않아 그냥 돌아 왔지요.

그런데, 집사람, 내내 눈에 밟힌 답니다.

모셔오자고 했습니다.

재고 유무를 전화로 확인하고 출발을 할까 하다가 그냥 방문키로 했습니다.

결심하고 떠나는 길, 성모님이 도와 주실 거라고 ...믿고 출발을 했는데...없다니요.

눈에 밟혀 다시 왔노라 설명드리고 사무실에 모셔저 있는 성모상이라도 모셔가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원장 수녀님, 웃으시며 포장을 해 주시네요.

집사람, 함박웃으며 신부님께 달려가 축성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렇지...성모님이 왜 도와 주지 않겠어? ", 집사람의 믿음. 대단합니다.

집사람 얼굴에 연상 미소가 함께 했습니다.

 

 

 

충남 당진 합덕의 '신리성지'는 조선 제5대 교구장 성 다블뤼 주교(1818-1866, 갈매못 순교)의 비밀 거처 였답니다.

사진 속 초가 집은 성 다블뤼 주교관이자 비밀성당이었고 동상은 다블뤼 주교 입니다.

주교는 이 곳에서 성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한글 교리서와 신심서 등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번역을 했답니다.

그리고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 기록해서 파리로 보냈다구요.

훗날 103위성인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아래 사진은 성당이고 그 내부의 모습 입니다.

성당안 성물판매소에서 2년전 '승리의 성모상'을 처음 대했습니다.

 

 

'승리의 성모'

1629년 루이 13세가 건립한 파리 '승리의 성모성당'에 모셔저 있는 성모상 입니다.

1832년 이 성당에 부임한 데 즈네트 신부는 신자들의 신앙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했으나 절망적이었답니다.

1936년 미사를 봉헌하던 중 "지극히 거룩하고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께 너의 성당을 봉헌하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답니다.

데 즈네트 신부는 곧 성모의 밤을 열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성당으 찾게 되었답니다.

1854년 "원죄없이 잉태하신 성모"교리 선포이후, 교황 비오9세는 '승리의 성모상'에 관을 씌워 드렸답니다.

수없이 많은 기적이 '승리의 성모님'을 통해 일어 났다구요.

'찬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0) 2012.09.16
아버지  (0) 2012.09.16
예수님의 못박힌 발  (0) 2012.04.18
예수상 3 (솔뫼성지)  (0) 2012.04.18
두 여인상(솔뫼 14처)  (0) 2012.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