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고창 '선운사(禪雲寺)'를 두번씩이나 다녀왔습니다.
한번은 지난 9월, 동문 사진클럽 'DIFIPHONO'의 꽃무릇 촬영여행에 동행하면서 였고
또한번, 두번째는 지난 10월, 동문 '산우회'의 1박2일 선운산 등반여행에 함께 하면서 였습니다.
첫번째 방문때는 꽃무릇만 처다보며 돌아다니느라 '선운사'는 대충 살피고 지나첬는데
두번째 방문때는 시간 여유가 있어 '선운사'를 꼼꼼히 살피다가 기이한 것(?)을 발견하고 찍고 글을 남깁니다.
한
'선운사(禪雲寺)'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선운산) 북쪽기슭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입니다.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더불어 전라북도의 2대 본사 가운데 하나 이지요.
오랜 역사와 자연환경 그리고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는 고찰(古刹)이자 대찰(大刹)입니다.
'선운사'의 중심에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이 아니고 '대웅보전(大雄寶殿)' 입니다.
보물 제209호(1958.9.17. 지정)입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이란 '대웅전(大雄澱)'을 높게 존칭하여 부르는 표현이지요.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 '문수보살, 우측에 '보현보살'의 3존(尊)을 봉안한 법당입니다.
부처님을 본존불로 좌우에 보살이 협시(夾侍; 양옆에서 가까이 모심)하면 '대웅전'이고
본존불을 좌우에서 협시하는 분이 부처님들로 되어 있으면 '대웅보전'입니다.
'선운사'의 대웅보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좌측에 '약사부처님'과 우측에
'아미타부처님'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웅보전'은 조선 광해군 5년에 건립된 것이라 했습니다.
맞배지붕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법당내부 천장에는 수많은 용(龍)들이 그름속에 몸을 감추고서 선운사를 수호하고 있다고 하지요.
그 수려한 '대웅보전' 바로 앞에 석탑이 하나 세워저 있습니다.
'선운사 6층석탑' 입니다.
문제는 이 석탑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부터 비롯됩니다.
"기단은 1층으로 마련하여 전체의 무게를 버티게 하고 그 위로 6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기단의 네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얇아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다섯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양끝에서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한 멋이 흐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대체로 잘 남아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설명문에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대체로 잘 남아있다'"라고만 기록되어있을뿐
(꼭대기와 관련해서) 더이싱의 구체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그런데...
불탑(佛塔)들은 3, 5, 7, 9층... 처럼 홀수로 쌓아 올려진 것들이 정석인데... 이 석탑(石塔)은 6층 입니다.
안내판을 읽어 보니...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원래 9층이었다는데 현재는 6층까지만 남아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군요.
안내판을 계속 읽어 봅니다.
"방형의 축대안에 지대석을 세우고 각층에 사각형의 중석을 올렸다. 6층 옥개석위에 복발이 있고 그 위로 팔각의 귀꽃으로 각축된 보개를
얹어 놓았다. 사적기에는 조선 성종때 행호선사가 홀로 솟은 이 9층 석탑을 보고 사찰의 중창(重創)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의 설명과 같이 이곳 선운사측의 설명문에도 꼭대기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습니다.
"팔각의 귀꽃으로 각축된 보개를 얹어 놓았다."라고 설명을 끝마쳤을뿐
탑상부(塔上部) 보개(寶蓋)위의 얹허저 있는 석물,'보주(寶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왜? 설명을 빼놓고 계속하지 않았을까요?
탑상부(塔上部, 上輪部라고도 하지요.)의 맨 꼭대기 석물(石物), 설명에 빠저 있지만 ...
자세히 보니... 남자의 생식기. 우람한(?) 남근(男根)이 아닙니까?
사찰 뒷편 은밀한 곳에 세워놓은 석물도 아니고...
신성한 '대웅보전'앞 석탑위에 남근(南根)을 올려 놓다니요...
마침 앞을 지나는 문화재해설사가 있어서 물었더니...남근(南根) 맞답니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탑들은 남자를 상징하고 세워젔다고 하고
이 탑 역시 '오랜 고행끝에 득도해서 부처가 된 인도의 왕자'를 기리며
세워진 것이라고 답하는 군요.
문화재해설사의 설명도 충분치 않았고 나 또한 불탑에 대한 연구가 깊지 않아 명료하게 설명할수 없는게 아쉽기는지만 ...
선운사 석탑위의 남근석(南根石),
불교 또한 우리네 전통신앙, '기복신앙(祈福信仰)'과 접목되며 이 땅에 자리를 잡다보니 그 과정에서
아들낳기를 간구하던 우리네 선인들의 '남아선호사상(男兒選好思想)'과' 남근숭배사상(男根崇拜思想)들에
영향받고 기초됐던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던 부인네가 절에 들어가 100일 치성을 드린후 득남(得男)했다는 전설(?)같은 얘기들도 많고
선운산 산행길에 맞나게 되는 '남근바위'하며
선운사 입구의 거목(巨木) 은행나무 의 속설(나무 부위를 점여다가 삶아 먹으면 득남한다?) ,
그리고 이곳 선운사 석탑의 남근석까지 두루 연관시켜 보면...
옛 '도솔산' 깊은 자락이 '아들선호 기복신앙'의 요람가운데 한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곳 사찰들을 방문해 보았습니다만 석탑위에 남근(男根) 석물이 놓여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도, 대웅전 앞마당 석탑 보개(寶蓋)위에 남근(男根)형상을 올려 놓은 곳은' 선운사'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불사(佛舍)의 종교적 관행가운데 하나로 속리산 법주사의 '송이(松耳)놀이'라 해서
매년 설날, 신자들이 목제(木製) 남근(男根)을 깍아 산정 신당에 봉납하는 풍습이 있었다지요?
'송이'란 남근(男根)을 이르는 불교적 은어 라고 들었습니다.
불교는 곧 우리 문화이고 역사이다 보니 옛 우리네의 '아들선호사상'이
불교 이곳저곳에도 문화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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