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는게 죄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는게 죄입니다.>
어느 손님이 수도원을 찾아가 노수도자에게 "수도원에서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노수도자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일어나고...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는게 죄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포자기나 절망, 체념, 무관심, 옳은 일을 실천하는 것에 대한 회의로
자기 자신을 세상 욕심과 악의 구렁에 맡기고 일어나지 않는게 더 큰 죄입니다.
<제 자리에 있을때 아름답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하고 깨끗한 물 한 컵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하지만 그 물이 화장실 변기통 속에 들어 있다면 같은 물이지만 인상을 찌푸릴 것입니다.
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햅쌀밥이 예쁜 사기그릇에 담겨저 있으면 먹음직 스럽지만,
바닥에 떨어지면 순식간에 그 밥은 양식이 아니라 쓰레기가 될 것입니다.
또한 남편이 아내곁에 누어 있으면 아무도 나무랄 사람 없지만
그 남편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 곁에 누어 있으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자리에 있을때 아름다움이 들어나는 법입니다.
<과거에 잇고있던 줄을 끊어 버리자.>
대륙을 횡단하던 여객기가 기관고장으로 광활한 사막에 불시착했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여객기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 빛 아래 달궈진 모래밭이
사방을 에어싸고 있었습니다.
조종사가 구조요청을 위해 무전기를 두드렸으나 아무런 회신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싣고 가던 식량과 음료수를 아껴 먹으며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잔해를 기점으로 하여 여러명씩 조를짜서 혹시 근처에 있을 부락을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이른 새벽 부서진 비행기 안에서 잠을 깬 사람들은 두서너 명씩 짝을 이루어 근처를 돌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둑해질 무렵이 되면 다시 비행기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날 며칠이 흐르고 식량과 물은 바닥이 났습니다.
물이 없는 이상, 더이상 살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사막을 여러 방향으로 뒤지고 다녔지만 헛수고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람이 비장한 각오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이러고 있다간 결국 우리 모두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밤마다 비행기로 돌아오곤
하는데 저는 이 비행기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조난지점으로 돌아와서는 안됩니다.
이제 마지막 기회입니다. 여기서 떠나 다행히 인가를 발견하면 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있다간 즉음뿐입니다."
다음 날 비행기는 불에 활활 타올랐습니다.
힘껏 손을 맞잡은 사람들은 서너명씩 헤어져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들이 돌아올 곳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사막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또 며칠이 흐르고 사람들은 드디어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을 발견하였습니다.
기쁨에 찬 사람들은 주민들이 내민 물로 목을 축였습니다.
"그의 말이 옳았습니다. 과거를 잇고 있는 줄을 끊어버릴 때라야
비로서 새 삶의 지평이 보이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경기도 화성 요당리 성지 주임신부
김대영(베드로)신부의 글 가운데서